빈집에서 젊은예술가들이 삶과 이웃을 가꾸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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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빈집에서 젊은예술가들이 삶과 이웃을 가꾸는법
12일까지 빈집-상실 이후의 사랑||영상문화콘텐츠제작소 '로컬'기반 문제의식 공유||빈집 소재 공동화 되는 지역, 예술 변화 및 해법 모색||이상호, 김수환, 박화연, 오석근, 윤석문, 정유승 등 참여
  • 입력 : 2021. 03.08(월) 16:21
  • 박상지 기자
광주는 빈집이다. 지속적으로 새것들이 들어서지만 공허나 허기가 가득하다. 오직 새것으로 도시를 채워가지만, 들어설 자리가 없어 빈집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짓기만을 반복한다. 기성의 가치는 빈집을 채우는 대신 빈집이 되도록 내버려두고 다른 무언가로 대체하는 데만 집중한다. 빈집에 온기를 불어넣는 일은 젊은 예술가의 몫이됐다. 오는 12일까지 광주 동구, 서구, 남구, 북구, 광산구 5개 구의 '빈집'에서 젊은 작가들의 의미있는 실험과 도전이 이루어진다. 전시 주제는 '빈집-상실 이후에 쓰는 사랑'이다.

영상문화콘텐츠제작소 만지작(이하 만지작)은 공동화 현상이 뚜렷한 지역의 상황과 예술의 위상변화를 '빈집' 투영하고 전시를 통해 공동체의 재구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에는 이상호, 김수환, 박화연, 오석근, 윤석문, 정유승 작가가 참여한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고문을 당했던 이상호 작가는 고문 후유증으로 치료하는 중 민중미술적 언어가 갖는 역량과는 다른 방식의 '리얼리즘'을 고안했다. 고문과 치료 사이에 얻어진 이 화법은 누구도 따라할 수도 없고, 그런 방법은 누구도 얻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오직 병원에서만 제작된 이 연작 드로잉은 지난 미술적 운동이 도달한 경지일지 모른다. 그에 대한 세간의 고정된 평가를 걷어내면, 그의 현재 작업은 '빈 집'에서 꾸려가는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광주 남구 사직안길 1-9 102호에서 감상할 수 있다. '병원에서 아버지' '정신병원' '벼우언에서 김영철 열사' 등 연작이 전시된다.

광주 서구 월산로 235번길 15-1에는 정유승 작가와 김수환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정유승 작가는 그간 두가지 빈집을 포착했다. 하나는 예술가, 다른 하나는 성매매여성들이다. 두 집단은 사회적으로 같은 궤도에 놓일 수 없지만 작가는 어떤 위화감 없이 이 둘 사이의 거리를 오고간다. 정 작가는 대대적인 재개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성매매집결지를 답사하면서, 이곳에서 삶을 지속했던 여성들의 '자취'와 '흔적'을 아카이빙하고 이를 작업으로 구성해 메트로폴리스가 기만적으로 관리하고 은폐하는 집결지를 가시화한다.

같은 장소에서 작업을 선보이는 김수환 작가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제도적으로 기입돼 한국사회를 압박하는 시기에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아버지와 가족의 고통스러운 풍경을 강렬한 위트를 통해 제시한 바 있다. 공사현장이나 공업용 도구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예술가로서의 활동·제작이 노동과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광주 북구 군왕로 47-1 2층의 빈집엔 박화연, 오석근 작가의 작업을 엿볼 수 있다.

박화연 작가는 5·18과 사북항쟁을 핵심 주제로 삼아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의 작업장은 '현장'이며 작업들은 '항쟁' 이후의 '현장'에서 직접 마주치고 경험한 것들을 조형함으로써 제시된다. 특히 1만1340개의 향을 태워 '재'(ash)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애도'나 '기념'을 위한 '재료'가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향이 재료 변하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고 다 타지 않은 것을 일일이 골라 솎아 내야 하는 인내를 동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재'를 기다리는 시간은 '죽음'이 아니라 생성의 시간임을 이야기 한다.

오석근 작가는 사진이 출현한 이래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과 기록을 다루는 일에 주목해왔다. 양자 사이를 교차함으로써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통해 굴절된 기억을 바로잡거나 지배적 역사 내부에 기입되지 않는 삶을 포착해왔다. 그가 성매매집결지를 직거나 기형적 균형을 갖는 건축을 촬영하는 것 이유다.

광주 광산구 상도산길 54 빵과장미에는 윤석문 작가의 작업이 전시된다. 고립된 세계를 캐릭터를 통해 표현해 온 윤 작가는 캐릭터의 유일한 거주지로 방을 설정하고 있다. 이곳은 거주지라기 보다 게토에 거주하고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게토에 모여있는 캐릭터들은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으로부터 간신히 도피해 있지만 게토에서 삶을 지속하는 것은 원리상 불가능하다. 표정 없이 상처 입은 윤석문 작가의 캐릭터가 '공허한 눈'으로 관람자를 만날때, 그들은 앉은 자리(큐브)에서 무언가를 발명하기를, 게토에서 벗어날 회로를 발명해야 한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