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죄책감" 사죄한 공수대원… 안아준 5·18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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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죄책감" 사죄한 공수대원… 안아준 5·18 유족
7공수 소속 광주 외곽 정찰때||“자신의 사격으로 민간인 숨져||이제라도 용서 구해 다행” 울먹||유족 “이젠 마음편히 살아달라”
  • 입력 : 2021. 03.17(수) 17:03
  • 김해나 기자

지난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 접견실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왼쪽)이 자신의 사격으로 숨진 故 박병현 씨 유족에게 사죄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지난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 접견실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왼쪽)이 자신의 사격으로 숨진 故 박병현 씨 유족에게 사죄 후 포옹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5·18민주화운동 당시 진압 작전에 참여한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사격으로 인해 무고한 희생자가 생긴 것을 인정, 유족을 만나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가해자가 자신이 직접 발포해 특정인을 숨지게 했다고 고백하며 유족에게 사과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조사위는 이번 만남을 계기로 5·18 당시 계엄군과 희생자간의 화해의 장에 첫발을 내디디고, 당시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계엄군의 치유에도 힘쓸 전망이다.

17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에 따르면, 5·18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A씨가 지난 16일 오후 3시께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해 희생자 유족을 만났다.

참배에 앞서 A씨는 국립 5·18민주묘지 민주의 문 접견실에서 자신의 총격에 무고하게 희생당한 故 박병현(당시 25세) 씨의 친형 등 유가족을 만나 진심 어린 사죄를 했다.

A씨는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 이 사과가 또 다른 아픔을 줄 것 같아 망설였다"며 오열했다.

유가족에게 큰절을 올린 A씨는 "40여 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이제라도 유가족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울먹였다.

A씨의 사과에 고인의 형인 박종수(73) 씨는 "늦게라도 사과해줘서 고맙다.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고 생각하겠다"며 "과거의 아픔은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 편히 살아달라"고 말했다.

이어 박 씨는 "용기 있게 나서줘서 참으로 다행이고 고맙다"며 A씨와 포옹했다.

이번 만남은 당시 진압 작전에 참여한 A씨가 자신의 가해 행위를 고백하고 유족에게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5·18조사위에 전달했고, 유족도 가해자의 사과를 수용하면서 마련됐다.

고 박 씨는 1980년 5월23일 농사일을 도우러 고향 보성으로 가기 위해 광주 남구 노대동 노대남제 저수지 부근을 지나가다가 순찰 중이던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의 A씨에 의해 사살됐다.

A씨는 총격 당시의 상황에 대해 "광주시 외곽 차단 목적으로 1개 중대 병력이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며 "화순 방향으로 걸어가던 젊은 남자 2명이 우리(공수부대원)를 보고 도망쳤다. 정지를 요구했지만, 겁에 질린 채 도주해 무의식적으로 사격을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숨진 박 씨의 사망 현장 주변에는 총기 등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이 전혀 없었다"며 "대원들에게 저항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사실도 없다.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가던 상황이었다"고 털어놨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01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당시에도 A씨는 "노대동 저수지 부근에서 동료 부대원 3명과 함께 민간인 4명에 대해 조준 사격을 해 그중 한 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5·18조사위는 당시 조사의 자료를 넘겨 받아 추가 조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5·18조사위 관계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특정 된 상태에서 이들이 한자리에 만나 사과·용서한 것은 처음이다"며 "3공수, 11공수여단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A씨를 알게 됐고, 증언과 고백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이들의 증언을 확보하는 것이 조사위의 의무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계엄군들도 명령을 받고 움직인 피해자지만, 국가가 가해자라는 틀에 가둬 방치한 것"이라며 "트라우마를 가지고, 알코올에 의존하며 가족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이들이 사실을 고백하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5·18조사위는 앞으로도 계엄군과 희생자 또는 유족 간 상호 의사가 있는 경우, 적극적으로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설립 취지대로 사과와 용서를 통한 불행한 과거사 치유와 국민 통합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다.

송선태 5·18조사위 위원장은 "당시 작전에 동원된 계엄군들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당당히 증언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자신의 사격으로 숨진 故 박병현 씨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