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에세이·최성주> 해외정착 4대 요소 중 최대 난제는 '자녀 학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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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에세이·최성주> 해외정착 4대 요소 중 최대 난제는 '자녀 학교 문제'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29) 외교관 근무 시절의 추억
  • 입력 : 2021. 04.19(월) 12:41
  • 편집에디터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필자는 직업외교관(career diplomat)으로 다양한 지역과 언어권에서 근무했다. 선진국과 개도국 등에 근무하며 다양한 경험을 축적했다. 언어권만 보더라도 영어는 물론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폴란드어, 아랍어 등 다채롭다. 열대아프리카와 고산지대에서도 근무했으며 인간의 생활환경이 천차만별이라는 걸 실감했다. 지난 2012년 초부터 1년 남짓 전남도 자문대사로 근무할 때 도(道)내 각급 학교에 특강을 다닌바 있다. 당시 학생들의 공통된 질문 중 하나는 '외교관 생활의 애환'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근무할 외국(통상적으로 주재국이라 함)에 도착한 외교관이 우선 조치해야 할 일이 있다. 거주할 집을 물색하고 은행에 구좌를 개설하며 자녀 학교를 알아보고 이동할 개인차량을 구입하는 거다. 이것이 해외정착 4대 요소다. 대사관에서 공무를 수행하면서 짬을 내 사적인 일을 처리해야 하니 정착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주택 구하기 전까진 대사관 부근 임시 거처에서 지낸다. 전임자 주택을 승계하는 경우도 있다. 자녀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초기 정착이 궤도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필자는 프랑스에서 세네갈로 바로 전근 발령이 나 난생 처음 아프리카 대륙을 밟은 기억이 생생하다. 초기에는 문화적 충격이 컸다. 세네갈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는 말리, 감비아, 기네, 기네비사오, 깝베르데 등 인접한 5개국을 겸임한다. 전형적인 아프리카 국가들로 말라리아를 비롯한 각종 풍토병이 건강을 위협한다. 필자도 세네갈에서 원인불명의 풍토병으로 고생한 적 있다. 생활환경은 물론, 근무여건도 열악하다. 당시 세네갈에서 인근국가를 연결하는 항공편이 마땅치 않아 출장계획을 세우기도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직항이 없는 경우 중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한국의 정반대편인 브라질에 부임할 때는 미국을 경유해야 했다. 마치 '지구의 방랑자' 같은 기분이 든다. 서울-알제리 구간에도 직항이 없으니 대개 파리를 경유한다. 해발 2300m인 고산에 위치한 멕시코시티는 평지에 비해 약 20%정도 산소가 부족하단다. 이러다 보니, 대사관 동료 중 불면증과 두통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조금만 뛰거나 2층 계단을 올라가도 숨이 찼다. 고산생활에 적응한 현지인들은 신장이 별로 크지 않으면서 심폐 부위가 발달돼 있다. 고산 생활에 익숙한 그들은 평지 달리기를 잘한다. 유명한 마라톤 선수 중에 케냐, 에티오피아 등 고산지대 출신이 많은 이유다.



정착과정이 완결 되려면 아무래도 이사화물이 선편으로 도착해야 한다. 개도국의 경우 통관절차가 복잡하고 관료들의 부패가 만연된 경우도 많다. 이사화물 도착이 지연될수록 외교관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스트레스 수치도 올라간다. 국적을 초월해 외교관들의 공통적인 애로사항은 자녀교육 문제다. 친구와 잦은 이별은 성장기 자녀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언어가 계속 바뀌는 것도 도전적인 요소다. 그만큼 자녀들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부인이 해외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심리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한국 외교관들의 경우 선진국과 개도국을 교대로 근무하는 순환근무를 원칙으로 한다. 소위 '냉탕과 온탕'이다. 필자도 이 원칙에 따라 해외발령을 받곤 했다. 과거에는 '청비총(靑秘總)'이란 은어가 있을 정도로 청와대와 장차관 비서실, 총무과(인사과) 근무자들이 미국, 유럽 등 인기공관에 발령받곤 했다. 요즘 이런 관행은 사라진 상태다. 직업상 평생을 해외로 돌아다니는 외교관들은 '역마살'을 타고 난 사람들이란 말을 듣는다. 외국 외교관들도 스스로를 '글로벌 유목민(global nomad)'이나 '방랑자(vagabond)'라고 표현한다.



흔히 외교관은 해외에서 대단한 특권을 누리는 줄 안다. 물론 국가를 대표하는 만큼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공사(公私)간 언행에 유의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외교관들은 근무하는 나라의 국내법령 특히 교통법규를 잘 준수할 의무가 있다. 외교관의 비행(非行)은 바로 출신국의 이미지를 훼손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외교 특권면제는 공적인 업무편의를 위한 기능주의적 성격을 갖는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외교관과 그 가족들이 부임과 이임, 출장 등 이동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 단지 외교관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지만 직업 외교관들의 경우 공무수행 과정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다. 외교관은 업무 속성상 차분하면서 보수적인 접근을 요한다. 한 나라의 명운이 걸린 외교안보 분야에서 근무하는 공직자들은 '돌다리도 두드리는' 자세로 매사를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