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승원의 순간과 영원을 담은 한 권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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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승원의 순간과 영원을 담은 한 권의 우주
  • 입력 : 2021. 04.01(목) 14:48
  • 박상지 기자

한승원 작가. 불광출판사 제공

산돌 키우기

한승원 | 문학동네 | 2만2000원

남은 생을 오롯이 문학에 헌신하기 위해, 한승원 작가는 고향인 장흥으로 되돌아가 '해산토굴'에 자신을 가두어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 시시포스와도 같은 구도자적 삶을 살며, 작가는 이번 책을 "(고려장 전설 속) 아들의 등에 업혀 가는 어머니가 자기를 버리고 귀가할 아들이 길을 잃을까봐 돌아갈 길 굽이굽이에 솔잎을 따서 뿌리듯 이 글을 쓴다"라고 밝힌다.

한국문학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는 한승원 작가는 실제로 두 작가(한강, 한규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러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후세이자 후배에게 남기는 이 글은 감히 '인류의 유산'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이채롭고, 새롭고, 깊은 통찰력이 스며 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 인물이 굴곡진 역사 속에서 야만에서 문명으로 옮겨가는 눈부신 순간이, 한 인간이 태어나고 떠나고 다시금 태어난 자리로 되돌아가는 경이로운 순환의 궤적이, 한 작가가 문학청년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대가로 발돋움하는 갈피갈피가 신간 '산돌 키우기' 속에 반짝이는 빛을 숨긴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자서전 '산돌 키우기'는 한승원 작가의 태몽으로 시작한다. '하늘복숭아같이 탐스러운 유자'를 주워 치마폭에 담는 어머니의 꿈이다. 어머니는 그에게 여느 유자보다 크고 탐스러웠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말해주고, 작가는 이를 여느 사람과는 다른 특출한 삶을 살게 될 것이란 예언처럼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묻어나는 곰살궂은 태몽을 작가는 허투루 흘려듣지 않고, 그것을 마치 신탁이자 의지로 삼아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다. 엄혹한 일제 식민지 시절을 유년기로 보낸 그는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삶의 긴박감, 생과 사의 무자비함, 폭력과 야만의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놓는다. 해방이 되고도 한반도의 남쪽 끝까지, 아이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침투한 이념의 대립을 몸소 겪어내며 시대의 아픔을 몸과 종이에 새긴다.

그러나 긴장을 늦출 새 없는 팍팍한 시절에도 그를 견디게 하고, 위로하고, 멀게는 '작가 한승원'으로 키워내는 할아버지가 존재한다. 작가는 "할아버지는 내 속에 하늘을 심어주려 했다" 는 말로 그에 대한 회상을 시작한다. 작가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난 이야기꾼이자 글(천자문)을 알려주는 할아버지와의 운명적인 일화를 통해 평생에 걸쳐 자신을 지배하고 또 구제하는 이야기의 힘을 다시금 복기한다.

'산돌 키우기'를 읽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자서전이자 또하나의 '소설'이며, 때로는 가장 인간적인 '신화'로 읽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일은 인간 한승원의 발자취를 오롯하게 따라 걷는 일이자 작가 한승원의 '창작 노트', 작품의 '후기', 창작의 비밀을 누설하는 '비서'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이제, 먼 우주로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도리어 우리를 먼 우주로 데려다놓는다. 비로소-이렇게, 우리는 '한승원'이라는 한 권의 책을, 한 권의 우주를 만난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