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은 어떻게 불가침의 성역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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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은 어떻게 불가침의 성역이 됐을까
  • 입력 : 2021. 04.08(목) 15:55
  • 박상지 기자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김준형 | 창비 | 2만4000원



한·미의 첫 만남 이후 미국의 존재감은 우리 사회에서 점차 커져왔다. 특히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한미군사동맹이 형성되면서 견고한 협력체계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동맹으로서의 협력과 자국의 이익이 충돌하는 기로에 섰을 때 미국이 어느 쪽을 택해왔는지 속속 드러난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로 미국과 수교한 조선은 일본의 공격적인 개입을 미국이 견제해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밀약으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묵인하고 간접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1945년 해방 직후 북위 38도선을 중심으로 한반도를 분할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은 급박한 상황에서 내린 최선의 임기응변이라는 미국의 설명과 다르게 동아시아에서의 봉쇄정책의 일부로 신중히 고려된 정황이 이후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과정도 마찬가지다. 식민지배 당사자와의 때 이른 국교 회복과 오늘날까지 불씨를 남긴 청구권 협정은 샌프란시스코조약(1951)과 한미상호방위조약(1953)으로 형성된 한·미·일 삼각동맹의 완성을 위해 미국이 한국 정부를 지속적으로 압박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대표적인 한·미관계 전문가로 활동해온 국립외교원 김준형 원장의 역작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새로 읽는 한미관계사'가 출간됐다. 한·미관계 150년 역사를 촘촘하게 살펴보는 동시에, 우리 대외정책의 핵심 상수이자 견고한 신화로 자리 잡은 한미군사동맹의 과거와 현재를 점검한다. 특히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최근 상황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사드 배치, 미·중 전략경쟁,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남·북·미 대화 등을 충실하게 논평하고 있어 토론거리가 풍성하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