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수현> 내 고향 목포가 섬들의 고향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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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수현> 내 고향 목포가 섬들의 고향인 이유
김수현 전남도 토지관리과
  • 입력 : 2021. 04.12(월) 12:46
  • 편집에디터
김수현 전남도 토지관리과
어릴 적 목포시 복만동 우리 집은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다.

선창가이고 목포역과 가까운 집의 위치와 함께 부모님 모두 진도가 고향이라 항상 이모 삼촌, 진도 송군리 할아버지, 모도 할머니, 아버지 친구 흑산도 아저씨 등 친척분들과 지인, 이웃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목포에 있다는 이유로 우리 집은 섬사람들의 사랑방이었다.

가사도에서 톳 양식을 했던 오촌 이모는 어린 조카 둘을 데리고 목포에 나오면 가끔 우리 집에 머물렀다. 내가 중2 때쯤이니까 35여 년 전 일이다. 예닐곱 살이던 조카가 이모한테 물었다.

'엄마! 목포는 밤에도 발전기를 돌리네?' 이모한테 뭔 소리냐 물었다. 조카가 살고 있던 가사도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섬 자체 발전기를 돌려 밤 9시까지만 전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모든 섬에 전기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섬에 살면 참 불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육지에서 차를 타고 어디를 가든 섬도 배를 타고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곳이라 미루어 짐작했다.

학창 시절 섬이 고향집인 친구들이 많았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목포로 유학 왔던 한 친구를 잊을 수 없다.

자취하는 친구가 안쓰러워 엄마께 부탁해 밑반찬을 가져다주었는데, 그 친구가 시골집(아마도 내 기억을 맞추어보면 신안의 '자은도'였음)에 갔다 왔다며 생땅콩을 주었다. 머리털 나고 처음 본 땅콩이었다. 지금껏 봤던 땅콩은 붉은색 얇은 옷을 입고 손으로 비비면 아이보리 속살의 알맹이인데, 처음 본 땅콩은 가는 줄 무늬에 딱딱한 껍질 옷을 입고 있었다.

또래에 비해 뭐든지 참 잘했던 친구였다. 집이 가난해서 일반 고등학교를 갈 수가 없다고 했다. 할머니와 남동생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며 담담하게 말하는 친구가 내심 놀라웠다. 친구는 야간 고등학교 진학과 취업을 택했다.

섬에서 할머니의 조그마한 밭농사로는 고등학교 진학이 어렵다는 섬사람들의 생활고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나는 친구의 야무진 입술과 넓은 이마의 단발머리가 떠오른다.

대학 1학년 큰 형부의 신안 장산 파출소 발령으로 큰언니가 장산도로 이사 갔다. 연년생 어린 조카 둘을 데리고 말이다. 그해 여름 방학 장산도에 놀러 갔었다. 한여름 녹음이 주는 무료함이 떠오른다. 언니는 섬에서 살려면 하고 싶은 것보다 주어진 것에 순응하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아이들을 데리고 갈 곳도 마땅히 없다고 했다. 섬에 살게 된 언니는 어느덧 선택할 수 없다는 답답함과 차별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가 생기고는 신안 비금도, 완도 청산도, 진도 관매도, 여수 금오도 등 주변 섬 여행을 종종 갔었다. 섬에 차를 가지고 들어가는데 줄을 잘못 서서 엉뚱한 섬에 들어갈 뻔한 적도 있었지만, 각각에 섬이 주는 아름다움과 지역적 매력이 분명히 다르게 다가 왔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섬의 매력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줄곤 했었다.

얼마 전 신안 임자대교가 개통하여 3분이면 섬 나들이가 가능해졌다. 신안의 12번째 대교로 천사대교에 이어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신안뿐만 아니라 여수-고흥을 잇는 연륙·연도교인 적금대교, 낭도대교 등이 있다. 섬사람들에게는 생활이 편리해지고 육지 사람들에게는 섬 방문이 더욱 쉬어졌다. 물론, 오롯이 배로만 갈 수 있는 섬도 있다. 여객선 환경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섬이 주는 또 다른 풍광과 매력, 먹거리, 문화 등을 이제 좀 더 쉽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섬이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고 섬사람들과 세월을 주고받으며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다. 목포가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와 환경이 자연스럽게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교류하며 섬과 호흡하고 있다.

요새 한국섬진흥원 유치에 내 고향 목포가 시끌벅적하다.

우리 전남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섬을 보유하고 있고, 안보와 해양 영토 관리상 중요도서인 영해기점 도서도 전국 23개 중 10개에 달한다. 섬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인식해 2012년 섬 진흥원 설립을 최초 제안했고, 2005년부터 섬가꾸기팀을 조직하여 '가고 싶은 섬'사업을 추진했으며, 2018년에는 전국 최초로 道 산하에 『섬 발전지원센터』를 개설했다. 우리도 만의 특수시책이자 선제적으로 추진해온 '가고 싶은 섬'사업은 공동화돼가는 섬을 주민은 살고 싶고, 관광객은 가고 싶은 생태 여행지로 가꾸는 주민 주도형 사업으로 사업추진 이후 섬 방문객이 22%가 늘고 주민소득이 5.8배 늘어나는 등 큰 성과를 증명해 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현실은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개발대상 도서가 전국 371개 도서 중 215개(전국 59%)가 지정될 정도로 낙후되어 있다.

섬 문화의 다양한 사례 수집이 가능한 지역적 특색뿐만 아니라 수많은 객관적 지표가 국토 균형 발전의 주춧돌인 한국섬진흥원 적지로 목포를 가리키고 있다.

이런 사실을 차지하더라도 목포 사람들에게 섬은 삶 자체이다.

항상 그들 생활의 쉼터이자 없어서는 안 될 마지막 정거장이었다.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그들 삶을 맨 얼굴로 받아낸 게 목포다.

'한국섬진흥원'이 '목포'에 있어야 할 이유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