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리본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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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노란리본의 약속
  • 입력 : 2021. 04.13(화) 16:35
  • 이용규 기자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배가 오고 가던 수에즈 운하의 입구가 꽉 막힌 지 6일만에 뚫린 일이 발생했다. 지난 달 23일 중국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로 향하던 길이 40m, 22만톤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의 뱃머리가 홍해 수에즈 운하 초입에서 대각선으로 고꾸라져 버린 것이다. 당시 운하 주변에 있던원유·화장품·살아있는 동물 등이 실린 300 여 척의 배는 오도 가도 못하며 물류 수송이 완전히 마비됐다. 1869년 개통한 운하는 페르시아만과 지중해를 연결하며 대서양과 인도양을 잇는 최단 해로로, 매일 65억 파운드 규모의 물동량을 담당하고 있다. 사고 6일째에 네덜란드의 구난업체인 스미트 샐비지를 포함한 예인선을 동원해 '슈퍼문'으로 발생한 최고조의 만조를 이용, 드러누운 컨테이너선을 재부상시켰다. 6일간 피해 규모는 약 1조1300억원으로 알려졌다. 선원들은 "당시 바람이 너무 세서 통제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수에즈 운하 관리청 측은 "기계 결함이나 사람 실수 때문인 것 같다"며 제대로 조사해보겠다고 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책임 소재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에버 기븐호의 처리 과정은 많은 희생이 따른 세월호와 비교된다. 물론 견주는 대상이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 바다 한가운데와 운하의 수로와는 많이 다르고 인명 피해도 천지차이다. 그러나 최악의 해난 상황에서 인명 중심의 해양구조, 사고 대응 능력과 기술력은 너무 대조적이다. 우리는 치밀함도 완벽함도 책임감도 없었고 사고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476명 탑승객 중 미수습자 5명을 포함해 304명이 "선실에 그대로 머무르라"는 지시를 따르다 수장됐는데도 지금까지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세월호 참사후 일곱 번째 봄이다. 광주 충장로와 금남로 거리, 전국 곳곳이 '기억하고 함께하겠다'는 노란 리본으로 새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다. 이들이 떠난 지 7번째 봄이 왔으나, "왜 구하지 못했냐"는 물음에 "혐의없음" 면죄부만 나오고 있다. 응어리진 아픔을 가슴에 안은 유가족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그날의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안전한 사회가 되는 날까지,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에게 한 '눈물의 약속'도 구두선에 그쳐 민망할 따름이다. 목포 신항의 녹슬고 빛바란 세월호 선체처럼 기억도 점점 녹슬어 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밝혀졌나요"? 이용규 논설실장

이용규 기자 yg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