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심명자> 그림책에 매료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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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향기·심명자> 그림책에 매료되는 까닭은
심명자 대한독서문화예술협회 대표
  • 입력 : 2021. 04.13(화) 13:00
  • 편집에디터
심명자 대한독서문화예술협회 대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림책은 유아나 어린이가 보는 책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글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책이 곧 책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그림책을 누구나 보는 책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온라인 서점 등 책의 판권에도 대상 분류를 유아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출판물 분류에 그림책 코드가 정착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림책은 여러 장의 그림을 책의 형식으로 출판했기 때문에 출판물인데도 말이다. 아마도 그림도, 문학도 아닌 제 3의 콘텐츠라서 그렇게 분류하는 듯싶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최근 그림책을 즐기는 풍토가 늘고 있다. 이쯤되면 '왜 그림책에 매료될까' 질문이 따른다.

텝스콧(1977)은 베이비붐 세대와 구분되는 젊은 세대를 N세대라 했다. 디지털 매체 발달과 함께 성장하는 첫 세대를 지칭했다. N세대는 디지털 매체를 통해 교제 및 학습이 자연스러우며 쇼핑과 놀이까지 아우른다. 이후 태어나는 아이들은 세상을 인지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계를 접한다.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 대학 '심 트윅' 심리학과 교수는 1100만 명의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디지털 세대 5가지 특징은 △느린 성장 △삶의 최우선 가치인 기술 △낮은 사회성과 인지 능력 △높은 불안증과 우울함 △보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꼽았다. 그림책에 집중하는 요즘 주목할 것은 낮은 사회성과 인지능력이다. 그런 이유로 한 권의 긴 장편을 읽는 아이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머지않아 '책 안에서 세상과 삶을 배우니 책을 읽어라'고 하는 게 고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우려와 궤를 같이 하며 그림책은 떠오르는 독서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이미지에 익숙해서 글을 읽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 뿐 아니라 지금은 개개인이 형성한 스토리가 중요해 졌다. '독자론'이 독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얘기다. 각자의 삶의 배경과 가치관이 다르고 의식과 인지의 폭이 다르니 그림으로 이야기를 형성하는 것도 제각각 일 수밖에 없다. 작가가 자신의 혼을 녹여 빚어놓은 작품이더라도 어떤 독자는 그림의 구석진 디테일에 꽂혀 자신과 견주고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자신의 감상에 대해 틀렸다고 핀잔을 들을 일도 없으니 존중받는 기분도 들테고 마음껏 자신의 이야기를 말 할 수 있어서 그림책을 즐길 만하다.

예컨대 '조랑말과 나'(홍그림, 이야기꽃출판사, 2016)는 등장인물 '나'가 조랑말과 여행을 떠나는 중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 '나'의 조랑말을 부숴버린다. '나'는 이내 나의 조랑말의 상처를 꿰매고 다시 일어서게 한 다음 또 여행을 떠난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구조이지만 그림 안에 철학, 심리, 성장 등 풍부한 테마가 들어있다. 황혼의 어르신이 이 책을 읽으면 생의 마지막을 느낄 것이며 이 세상을 떠날 때 인간의 삶이 완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반면, 유아가 읽을 때는 조랑말이란 친구와 나들이를 가다 사고가 나 부서졌지만 일어서서 다시 가는 이야기로 흥미롭게 읽을 것이다. 청소년이나 중년이 읽는다면 살아가는데 언제나 어려운 일을 만나지만 그것을 극복하면 성장하는 것임을 공감하게 된다.

그림책에 집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예술 교육의 폭이 달라진 점이다. 7차 교육과정 때까지도 중·고등학생들이 미술·역사시간에 작가 이름과 작품 이름을 선긋기 하듯 외우기에 급급했다. 09개정부터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예술 창작교육이다. 시 쓰기 '나도 작가' 교실, '나도 그림책작가' 등 창작 활동이 단위학교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예술을 감상하는 힘도 늘고 향유의 폭이 커지고 있다. 우리에게 삶의 질을 높여주고 가치를 재발견하는 기능을 하는 예술을 생활 속에서 누릴 수 있도록 하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는가.

독자들이 그림책을 선호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매력은 책을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글밥이 적고 그림이 가득 찬 그림책은 평균 16화면으로 이뤄진다. 짧은 시간 내에 웬만한 서사는 다 읽어낸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장면을 만나면 설레고 뭉클하기까지 한다.

그림책을 즐기다 보면 주제와 관련해 문학, 정보, 철학 등에도 손을 내밀 때가 올 것을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 어른도 아이도 그림책을 혼자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책을 읽고 그 분야를 확장해 가는 타인과 공유는 결국 자신의 가치 체계를 넓혀주는 길이 될 테니까 말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