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어두운 홀 같은 그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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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어두운 홀 같은 그날의 기억
  • 입력 : 2021. 04.15(목) 16:24
  • 박상지 기자

김홍모 | 창비 | 1만7000원

김동수씨에게 여전히 세월호의 기억은 '홀', 깊고 어두운 구멍과도 같다. 시간이 지나도 구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은 떨쳐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7주기를 앞두었지만, 그에게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홀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씨의 이야기' 중-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아 세월호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가 출간됐다. 세월호에서 학생 20여명을 구해 '파란 바지 의인'이라 불리는 김동수씨의 증언을 기반으로 세월호 생존자의 트라우마와 참사 이후의 삶을 그렸다. 용산참사, 제주 강정마을 투쟁, 제주 4·3 등 한국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그려온 만화가 김홍모가 3년에 걸친 작업 끝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4·16재단 공모 '모두의 왼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 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에 수익금이 기부되는 『홀』 북펀딩은 목표 금액을 하루 만에 달성하며 화제를 모았으며, 시민 총 1000여명이 힘을 보탰다.

작품은 생존자 '민용'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제주 화물차 기사인 민용은 육지에서 일을 마치고 동료 기사들과 함께 인천항에서 제주행 세월호에 트럭을 싣는다. 안개가 짙게 껴 출항이 늦어지자 차를 빼서 목포로 향할까 고민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출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세월호에 탑승한다. 다음 날인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아침식사를 마치고 쉬던 중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배가 기울어진다. 동료들과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으로 올라가려던 차, "아저씨, 여기 좀 도와주세요!" 하는 외침이 들린다. 세월호 선내 중앙의 홀은 배가 직각으로 기울어지면서 낭떠러지가 됐다. 민용은 소방호스를 이용해 홀에서 학생들을 끌어올렸고, 구조된 학생들이 그가 입고 있던 파란 바지를 기억하면서 이후 '파란 바지 의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스무명이 넘는 학생을 구하고 본인도 구조되었지만 그날 이후, 민용은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다. 시간이 지나도 구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은 떨쳐지지 않았다. 수차례 자해를 시도할 정도로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그에게 여전히 세월호의 기억은 '홀', 깊고 어두운 구멍과도 같다.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에게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홀'은 세월호 생존피해자의 사연을 다루지만, 상당 분량을 피해자 개인이 아닌 가족의 시점과 이야기에 할애한다. 작품의 1부가 민용의 시점에서 세월호참사 당시의 상황을 그린다면 2, 3부는 참사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둘째, 응급구조학과를 졸업한 첫째, 그리고 민용의 아내 시점으로 진행된다. 책은 재난의 피해가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과 공동체로까지 연장된다는 점, 그리고 그 피해의 복구를 위해서는 가족과 공동체, 더 나아가 사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미류는 "진상규명은 사건의 조각들을 이어붙여 함께 기억할 말들을 만드는 일이다. 구하지 않은 국가에 책임을 물을 때, 죄책감과 분노와 슬픔을 떠도는 마음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며 참사의 진상과 책임소재 규명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생존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는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