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로니아의 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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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바빌로니아의 복권
  • 입력 : 2021. 04.18(일) 14:29
  • 박상지 기자
1941년 공개된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우연과 불확실성을 매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도박의 나라를 날카롭게 그리고있다.

소설 속 바빌로니아는 이성과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다. 그저 운에의해 노예부터 총독까지 지낼 수 있고,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운이 좋으면 참수당하지 않는다. 바빌로니아에서 우연은 백성들에게 매번 다른 형태의 삶을 정해주고 여러개의 목숨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곳 사람들이 불확실하고 우연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까닭은 복권 때문이다. 바빌로니아의 초창기 복권은 당첨된 이들에게 즉석에서 보상하는 초보적인 방식이었으나 실패를 경험하게되면서 거듭 개선된다.

개량된 복권에는 벌칙이 추가됐는데, 행운과 불운 사이의 아찔한 줄타기를 타야하는 짜릿함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복권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보상은 기발해지고, 벌칙은 잔인해졌다. 백성들은 비상식적인 복권의 보상과 벌칙의 개선이 아닌, 보다 더 많은 이들이 복권에 참여하게 해야한다는, 역시 비상식적인 의견을 요구한다. 그들의 요구는 특권과 불공평에 대한 항의가 아닌 가난하다는 이유로 복권으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최근 서울 강남의 압구정 현대아파트 80평대가 80억대 매매됐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2년전만 해도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50억원에 거래가 됐었다고 한다. 무려 30억원이 2년만에 오른것이다. 그저 남의 동네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강남 아파트값이 서민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무겁다. 머잖아 서울 전역, 전국 아파트 값이 치솟을것이고, 성실하게 주택자금을 모으고 있는 실수요자들은 높아진 '내 집 한채'의 문턱 앞에 좌절하고, 깐깐해진 대출 규제 앞에서 두번 신음할 것이다.

암호화폐 도지코인의 파죽지세는 서민들의 또 다른 신음이다. 도지코인은 올해 들어서만 6000% 넘게 폭등했고, 지난 한주간만 해도 400%가 폭등했다. 언제 갑자기 주저앉아 버릴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타고있는 이들의 평균연령은 35세. 내집 한 칸이 절실한 실수요자의 연령과 일치한다. 성실하게 평생 모아도 집 한칸 마련할 수 없는 현실과 쉬는날 반납하며 일한 댓가의 상당부분을 세금으로 뜯겨야 하는 억울함,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부를 축적하는 이들로부터 느껴지는 것은 불의와 불공정, 술수와 권력이 만들어 낸 부정의가 전부일테다. 열패감에 사로잡힌 젊은세대들은 오늘도 고대 '바빌로니아의 복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