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하> 기본소득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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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상하> 기본소득에 대한 오해와 진실
박상하 기본소득국민운동전남본부 공동대표
  • 입력 : 2021. 04.20(화) 15:55
  • 편집에디터
박상하 기본소득국민운동전남본부 공동대표
기본소득은 이제 우리 집 문 앞까지 와있다. 어떤 방식으로 문을 열어줄 것인지 논쟁이 한창이다. 다가오는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도 부상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유불리를 따지면서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아무런 조건도 없이 국민 모두에게 현금을 주겠다는 신기루와 같은 꿈이 실현될 수 있을지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정치권에서는 구체적인 대안 없이 기본소득의 장단점만 부각시키기 때문에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거의 정치 공학적 입씨름 수준이다.

논쟁은 치열하게 하되 기본소득의 개념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이 단일한 입장에서 제안된 것이 아니라 좌파와 우파를 가로지르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에서 주장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사실상 기본소득이란 이름으로 서로 다른 내용과 유형이 혼재되어 이것 역시 명확히 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크게 좌파모델과 우파모델 두 종류로 나뉜다. 양쪽 모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공통점에 기초한다. 이는 헌법 제34조가 규정한 사회적 기본권이며 생존권에 기반을 둔다. 좌파 모델은 현재의 복지제도로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담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현재의 복지제도를 유지하면서 기본소득이 더해져야 사회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다. 우파모델은 지금의 복지제도가 비효율적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현행 복지제도를 구조조정하고 기본소득으로 대체하여 통폐합하자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신자유주의적 발상이다. 즉, 증세 없이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복지마저 시장에 맡기자는 작은 정부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기존의 복지혜택은 폐지되거나 축소될 공산이 크다.

가이 스탠딩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보편성, 개별성, 무조건성, 현금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청년기본소득, 농어민기본소득 등 이미 낮은 수준에서 부분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코로나이후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면서 기본소득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이와 같이 특정계층에게 임시로 지급되는 용돈에 불과한 기본소득이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는 주장도 많다.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기본소득 지급액에 대해 어느 국가에서든 1인당 GDP의 25%정도(74만원)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지만 낮은 단계부터 조금씩 시작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현재 국내에서 기본소득 모델로 제시된 것은 OECD평균 복지지출 수준을 목표로 한 GDP의 10%인 1인당 30만원이며, 장기적으로는 최저생계비 수준과 단계적 확대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욕구에 기반한 복지국가를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권리에 기반한 복지국가 프로그램을 한 층 더 추가할 것인지에 있다.

또 다른 사고의 착시를 살펴보자. 기본소득은 북유럽의 복지선진국인 핀란드와 스위스에서도 실패했거나 국민들로부터 거부당한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핀란드의 실험은 실업자만을 대상으로 한 사례로서 취업률이 상승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언론의 과도한 상상이다. 오히려 핀란드 사회보장국 경제학자인 시그네 야우히아이넨은 건강과 스트레스 등 정신적인 행복지수가 높아졌다는 주장도 있다. 스위스의 국민투표 부결 이유는 기존 복지제도의 위축을 우려한 것이었고 기본소득을 헌법에 명시한다는 헌법개정안이 부결되어 시작을 못한 것이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이처럼 기본소득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해석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스가 과도한 복지지출 때문에 망했다는 가짜뉴스와 다를 바 없다. 과거 안티 국민연금을 기억하는가. 한 네티즌의 글로 시작된 국민연금의 비밀은 온 나라를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다. 국민연금 재정이 고갈된다는 괴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픈 일이다. 자칫 기본소득도 이런 착시현상에 휘말려 본질이 왜곡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총리였던 조르주 클레망소는 '전쟁은 너무도 중요해서 장군들에게만 맡길 수가 없다'고 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기 때문에 군사전문가의 판단에만 의지할 수 없단 얘기다. 전쟁만이 아니다. 정치, 기본소득 또한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정치인, 전문가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문적 식견 때문에 숲을 못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문 앞에 와있는 기본소득은 처음 가는 길이기에 국민 모두가 함께 연구하고 더 많이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