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서자마자 불편·불안·공포에 시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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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집 나서자마자 불편·불안·공포에 시달려요"
지체 장애인 외출 동행해 보니 || 울퉁불퉁 인도 휠체어 이용 불편 ||저상버스 타려면 장거리 이동 ||정류장서 장시간 대기·승객 눈치 ||“배차간격 줄이고 인식개선 필요”
  • 입력 : 2021. 04.20(화) 17:35
  • 최원우 기자
교통약자에 해당하는 고명진씨가 저상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버스장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광주 남구 봉선동에 거주하는 한 지체 장애인은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저상버스가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휠체어를 빌려줄 테니 지금 당장 버스를 이용해 목적지로 이동해 보라"며 화를 냈다. '목적지까지 버스가 안 가서 그러는 것이냐'고 질문하자 그는 "갈 수는 있지만, 어렵고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상버스 정류장까지 먼 길

제41회 장애인의 날인 20일 전동휠체어를 이용 중인 고명진(35·여) 씨를 만났다.

고 씨는 광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버스 노선이 센터로 직행하지 않다 보니 저상버스와 지하철 두 가지를 이용해 출퇴근하고 있다.

"출·퇴근을 떠나 이동하기가 참 어렵죠. 버스도 버스지만, 정류장까지 가기도 전에 힘이 빠집니다."

고 씨의 집과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에는 저상버스가 서지 않는다. 그래서 저상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큰길까지 훨씬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그 과정은 참으로 힘이 든다. 전동휠체어가 겨우 통행할 수 있는 좁디좁은 인도, 울퉁불퉁하다 못해 파이고 깨진 보도블록, 먼저 통행하고 있음에도 걸리적거린다는 듯 불평 불만하며 지나가는 시민들까지. 고 씨의 매일 아침 출근길은 짜증과 공포, 고통으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매일 이것을 반복해야 한다. 저상버스가 아니면 고 씨는 어디를 가기조차 힘이 들기 때문이다.

●20분 이상 기다림은 기본

고 씨가 주로 이용하는 저상버스는 7번이다. 해당 버스를 이용해 지하철역이 있는 충장치안센터까지 이동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고 씨와 함께 버스를 기다렸지만, 20분이 지나도 버스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늦느냐고 물었더니 고 씨는 "평균적으로 일반버스 3~4대가 지나가야 저상버스 한 대가 와요. 운이 안 좋으면 정류장에서 40분 넘게 기다리기도 합니다"라고 답했다.

일반버스를 이용했다면 목적지까지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고 씨는 집을 나온 이후 40여 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저상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섰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버스에 탑승하려면 휠체어가 버스에 올라탈 수 있도록, 버스 기사가 리프트가 내려줘야 하는데 기사 숙련도에 따라 탑승 시간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숙련된 기사를 만나면 탑승까지 2분이 소요되는 반면, 오래 걸리면 10분이 소요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버스 이용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고 고 씨는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탑승하고자 소비된 10분 동안 버스에 타 있는 일반 시민들의 불평불만이 그대로 체감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출·퇴근 시간 만석인 저상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고 씨는 탑승을 포기한 채 언제 올지도 모르는 다음 저상버스를 기다린다.

이런 불편 속에서도 고 씨는 콜택시가 아닌 저상버스를 이용한다. 이유는 하나다.

"불편하다고 아무도 안 탄다면 이용량 등을 근거로 더이상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며 "불편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저상버스를 이용하다 보면 조금씩이라도 개선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교통약자 인식개선 시급

광주시가 교통약자들을 위한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이날 광주시에 따르면, 광주에 운행되고 있는 버스는 총 999대로 이중 저상버스는 35개 노선, 261대가 운행 중이다.

광주시는 지난해에는 교통약자(휠체어·유모차 등)들이 불편함 없이 탑승할 수 있도록 03, 07, 18노선에 3개의 출입문이 달린 저상버스 6대를 도입했다.

또 스마트폰 앱 서비스인 '광주교통약자버스'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 등 교통약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앱에서 정류장, 저상버스 위치를 검색한 뒤 운행 중인 해당 노선 차량을 선택해 예약하면 해당 내용이 실시간으로 버스 기사에게 전달된다. 버스 기사는 운전자 단말기를 통해 예약 내용을 확인하고 정류장에 탑승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준비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에도 갈 길은 멀다. 근본적인 구조개선만이 답이기 때문이다.

정연옥 광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우선 버스 4대를 보내야 도착하는 저상버스는 저상버스만 이용해야 하는 교통약자에게는 버스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라는 말과 같다"면서 "또 이용하더라도 시민들의 불평불만을 현장에서 체감해야 하는 교통약자들은 마음의 병이 조금씩 늘어나는 상황이다. 버스 차량 대수, 사회적 인식 등 전체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우 기자 wonwoo.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