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으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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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최중으로 살기'
  • 입력 : 2021. 05.09(일) 16:29
  • 최도철 기자
배우 윤여정. 한양대 재학 시절 국문학과 교수였던 박목월에게 작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그녀는 세련된 언어구사에 능숙한 시인이거나 소설가는 아니다.

하지만 수수한 얼굴만큼이나 담백한 그녀의 말에는 진심, 겸손, 유머, 쿨, 위트가 다 담겨 있다. 그녀는 잎이 많으면 꽃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부사도 형용사도 절제한다. 늘상 솔직하고 당당하다.

배우 윤여정이 한국 영화사 102년에 빛나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으면서 남긴 어록들이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했다.

'오스카를 훔친 쇼스틸러, 재치있고 센세이션한 배우, 브래드 피트를 놀릴 수 있는 유일한 배우, 오스카 다음 사회자'라며 외신들도 극찬을 쏟아냈다.

위트있고 솔직한 윤여정 화법은 '윤여정에게 스며들다'의 줄임말 '윤며들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종심(從心)을 넘긴 나이에 '월드스타'가 된 윤여정을 보며 '윤며들기'에 도전하는 시니어 액터들도 늘고 있다. 이쯤되면 가히 윤여정 신드롬이라 할 수 있다.

아카데미를 계기로 윤여정의 이런 솔직담백한 성격이 알려지면서 젊은이들도 열광한다. 그녀를 '새비지 그랜마(솔직한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가가고 싶은 어른", "쿨해지는 법을 배우고 싶다"며 그녀와 닮아가기를 원한다.

이미 '윤스테이', '꽃보다 누나', '윤식당' 등 그동안 예능프로그램에서 신박한(?) 어록들을 거침없이 쏟아냈지만, 그 가운데 단연 압권은 아카데미상 수상후 가진 간담회에서 발언한 '최중으로 살기'이다.

'지금이 최고의 순간인가'라는 한 한국 특파원의 질문에 그녀는 "최고란 말이 싫다. 최고가 되려고 하지 말고, 우리 다 최중으로 동등하게 살면 안 되냐"고 되물었다.

시상식 소감에서도 "나는 경쟁을 믿지 않는다"면서 다른 후보 배우들을 향해 "우리 모두 승리한 것이며, 단지 오늘은 내가 운이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해 좌중을 감동시켰다.

최고, 최다, 최대…. 모든 것에 줄을 세우고, 등급을 매기는 1등 지상주의,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에 집단최면이 걸린 한국사회에 윤여정이 전하는 메시지가 엄하고 중하다.

최중은 단순 언어유희가 아니다. '다 같이 최중이 되는 사회'를 가슴에 담은 윤여정의 삶의 지혜가 녹아 있다.

최중(最中)은 최중(最重)이 아닐까.



최도철 기자 docheol.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