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 5·18 왜곡 더 이상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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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칼럼
김군, 5·18 왜곡 더 이상 안되네
  • 입력 : 2021. 05.16(일) 15:45
  • 이용규 기자


광주민주화운동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깊은 공포감으로 남아있다. 80년 5월18일 광주 대인동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서 5월 참상을 첫 목격했다. 학살극의 서막을 본 것이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장성에서 열린 행사에 학교 대표로 참가후 탑승한 광주행 직행버스가 시외버스터미널 입구에 다다르자 승객들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차창밖 아스팔트 도로위에서 얼룩무늬 군복의 공수부대원들이 청년들을 붙잡아 곤봉으로 내리치고,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곤죽이 된 청년들은 바지가 벗겨진 속옷차림으로 아스팔트위에 무릎을 꿇었다. 급박한 상황을 인식한 버스운전사는 터미널에서 외곽인 월산동 방향으로 차를 몰아 새파랗게 질린 승객들을 하차시켰다. 백주대낮에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만행을 자행한 그 공수부대원들은 신군부의 정예부대인 7공수여단 33대대, 35대대였음을 신문사 입사후 알게 됐다.



올해 41주년이 된 5·18은 미얀마의 유혈 민주화투쟁과 겹쳐 더 아프다. 5월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옛 전남도청 광장에 세워진 미얀마 민주항쟁 사진판에는 광주의 아픔이 오버랩된다. 시간과 공간이 달랐지만 두 곳에서 벌어진 학살극은 헌정질서를 짓밟은 군부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광기가 만든 참상이었다. 미얀마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군경의 총구앞에서 "쏘지말라"고 간청하며 무릎꿇은 수녀의 애절한 호소 사진은,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선 광주시민의 의로움이 투영됐다. 신군부의 5·17 내란을 저지하고자 용기있게 저항해 승리의 역사로 부활시킨 광주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미얀마 민주화의 봄을 뜨겁게 응원하고 있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었지만 광주민주화운동에 가해지는 폭력은 여전히 야만적이다. 날조 등으로 5·18을 왜곡하고 조롱, 민주주의 자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가짜로 확인된 '광수'로 대표되는 북한군 침투설은 후안무치한 조작극의 극치이다. 북한 특수군 출신 탈북자의 거짓 주장과 80년 당시 신군부를 옹호하기 위해 북한 개입설을 세계에 퍼뜨린 외무부의 기획 문건은 허탈감을 준다.



광주민주화운동 왜곡 처리법 시행으로 수법은 더 교활하다. 법망 피해가기의 변형된 폄훼와 왜곡으로 치고 빠지기다. 전국적으로 공분을 산 매일신문과 위덕대 박훈탁 교수의 5·18 폄훼 만평과 학점을 볼모로 북한군 개입설을 언급한 강의가 그렇다. 유공자 명단 공개 요구와 5·18 유공자 귀족 예우설도 근거없는 망신주기 레퍼토리다. 법으로 단죄된 가해자는 훈장을 받고, 피해자는 처벌을 받은 역설이 기막히다. 극우 보수세력은 '부정유공자'가 있는 것처럼 도덕성을 자극하고 있다. 5월단체 권력화가 맘에 들지 않지만, 순서가 잘못됐다.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발포 명령자를 밝히는 게 먼저다. 실상은 5월 유공자들은 억대 보상금도, 공무원 시험에 대거 합격도 없다. 생활고와 병마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팩트다. 그런데 극우 보수 세력들은 5·18 희생자와 국민간 분열을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똑같이 예우받아야할 유공자 집단간 싸움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거짓과 선동으로 이익을 취하는 이들이 자극적으로 편집해 클릭장사에 나선다.



역사적·사법적 판단이 끝난 5·18 왜곡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 없이 이뤄진 전두환·노태우 사면에서 비롯된다. '이명박근혜' 보수 정권에서 보이지 않는 뒷배에 힘입어 극우 보수 세력들은 5·18을 왜곡·날조·폄훼의 씨앗을 키워냈다. 가짜뉴스는 공동체의 숭고한 정신과 가치를 훼손하고, 갉아먹는 독버섯이다. 인터넷 공간은 5·18 왜곡과 폄훼의 숙주이다. 억측에 가까운 해석과 근거없는 주장으로 5월의 상처를 덧내고 있다. 오염된 5·18 정보를 무방비로 접한 이들에 의해 재생산돼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아직까지 미궁속에 있는 핵심 진상은 밝혀야 할 역사적 과제이다. 5월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들의 고백으로 가려진 그날의 진실에 한발짝 더 다가가고 있어 다행이다.

쟁점 사안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규정으로 극우 보수세력들의 틈새를 차단시켜야 한다. 국가보고서 채택으로 이어져야 할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이 막중한 이유이다.

광주 공동체의 정신과 가치를 훼손하는 5월 왜곡과 폄훼에 대해선 엄정한 법의 잣대로 심판해야 한다. 무조건 입을 닥치고,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왜곡하면 처벌이 따른다는 단호함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5·18왜곡처리법이 고소·고발없이 처리됨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엉거주춤한 태도가 아쉽다. 분명한 왜곡임에도 5월 단체나 5월재단이 고소·고발을 해야만이 수사에 들어가니, 법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경찰 사이버 범죄 수사대를 대상으로 5·18 진실과 왜곡의 소양교육도 검토해보면 좋겠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선언한 '5·18 교육 전국화'도 학생들에게 내실화있게 제공되길 희망한다.



핏빛으로 얼룩졌던 5·18은 슬픔을 넘어서야 한다.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5월은 그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가 아닌 2030 시선으로 발전돼야 한다. '10일간 항쟁의 역사'는 전세계인이 찾는 축제가 되고 문화상품이 돼야 한다. 굳건한 진실에 바탕을 둔 서사시는 흔들림이 없다. 한국 민주주의 상징물이 된 옛 전남도청 광장과 분수대는 시대에 눈맞추고, 세대에 발맞추게 될 것이다.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