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실도 노동자에겐 안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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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학교 급식실도 노동자에겐 안전하지 않았다"
김재순 파쇄기 사망 1년 매곡초 급식실 특별안전점검 ||2019~2020 산재발생 학교 54개||장시간 노동…근골격계·폐질환多 ||산안법 포함돼도 산재 신고 눈치 ||급식 업무 인력 확충 바램 ‘절실’
  • 입력 : 2021. 06.01(화) 17:00
  • 양가람 기자

1일 오후 광주 북구 매곡초등학교 급식실에서 광주시교육청 소속 안전관리자가 급식 노동자들을 상대로 안전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18년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을 계기로 학교 급식 조리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이 강화됐다. 하지만 여전히 급식 조리원들의 산재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다 학교 측 눈치를 보며 산재 신청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급식 조리원들은 인력 확충과 시설 개선만이 산재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교육청, 산재 발생 학교 대상 특별안전교육·점검

"지난 3월 광주 관내 학교 교정에서 잔반통을 운반하던 조리원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손가락을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무거운 잔반통을 나를 때는 2인1조로 작업했어야 하는데, 혼자 무리하게 작업하다 사고를 당한 겁니다."

1일 오후 광주 북구 매곡초등학교 급식실. 김승범 광주시교육청 안전총괄과 주무관이 조리원들을 대상으로 급식실 안전사고 예방 교육을 진행했다.

이날부터 내달 13일까지 진행되는 산업안전보건분야 특별 지도·점검은 지난 2019년부터 2020년 사이에 산업재해가 1건 이상 발생한 학교 54개교를 대상으로 한다.

매곡초는 지난 2019년 야채절단기에 조리원의 손가락이 끼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산재 사고 이후 경각심을 갖게 된 학교 측은 급식실 곳곳에 안전 주의 스티커를 붙이고, 조리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산업안전보건법령 요지'를 게시해 뒀다.

김 주무관은 "급식실에서는 끼임, 골절, 화상 등 사고가 주로 발생한다. 대책만 보면 간단하지만, 현장에서 분주하게 작업하다 보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모든 작업을 할 때는 다른 사람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그때그때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전교육 받지만… 급식 노동자 산재 이어져

'광주 관내 학교 현업 노동자 직종별 재해 발생현황'을 살펴보면, 지난 2019년부터 2020년 사이 70건의 산업재해 가운데 72.9%에 이르는 51건이 조리직종(급식실)에서 발생했다. 유형별로는 △근골격계질환(30%·19건) △넘어짐(떨어짐)(23.3%·16건) △부딪힘(맞음)(16.7%·10건) △화상(13.3%·11건) △베임(찔림)(6.7%·7건) △끼임(6.7%·2건) 순이었다.

김정희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광주지부 사무처장은 "사실 통계는 정확하지 않다"면서 "급식 업무는 일 강도가 너무 세다보니 팔목, 팔꿈치, 어깨 등 인대가 닳아지거나 끊어져 수술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급식실 산업 재해가 끊이지 않지만, 학교 측 눈치를 보느라 산재 신청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교육서비스업으로 분류된 급식 노동자들은 그동안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2017년 2월 고용노동부가 학교 급식을 '기관 구내식당업'으로 분류해 산안법의 적용을 받도록 했으나, 학교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2018년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사고 이후에야 분기별로 6시간씩 안전보건교육을 받는 등 급식 노동자들도 본격적으로 산안법의 적용 대상이 됐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조리 작업 중 안전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급식 노동자들 사이에선 '인력 확충'만이 근본적 예방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리원 1명이 학생 170명 식사 책임

김 사무처장은 "가장 시급한 건 급식실 배치기준 손질"이라며 "광주의 경우 조리원 한 명이 평균 160~170명의 학생들 음식을 만든다. 특히 코로나19로 시차배식이 시작되면서 오전 8시반 정도에 일을 시작해 11시께부터 배식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000명이 넘는 학생들 밥을 단시간에 만들어야 하다보니 급식실 내 뛰어다니는 조리원도 많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의 배치기준이 조리원 한 명당 50~70명 수준임을 감안하면, 학교 급식 조리원의 업무량이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급식 조리원들은 인력을 확충해 1인당 100명 정도로라도 업무 강도를 줄여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현재 대량의 조리 작업 과정에서 손가락이 굽거나 어깨 등에 무리가 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조리원이 많다. 하지만 상당수 조리원들은 학교 혹은 위탁업체 측 권유로 산재를 포기한다. 몸이 아파도 참고 일하다 방학에야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경우도 많다. 계약직 노동자인 만큼 혹시나 재계약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큰 탓이다.

이와 함께 조리실 내 환기장치 등 작업시설 개선에 대한 요구 목소리도 크다.

최근 경기도에서 12년 동안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으로 숨진 조리실무사가 산재 인정을 받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는 학교 급식노동자의 직업성 암이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라고 평하며, 학교 조리실 내 환기시설에 대한 전수조사 등을 촉구했다.

1일 오후 광주 북구 매곡초 급식 조리실에서 안전관리자가 야채절단기를 점검하고 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