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이 황홀한 핏줄들을 누가 직조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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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이 황홀한 핏줄들을 누가 직조할 수 있단 말인가
갯벌, 거꾸로 자라는 나무
  • 입력 : 2021. 06.10(목) 15:29
  • 편집에디터
미역이나 톳은 푸른색일까 갈색일까? 푸른색이었는데 갈색의 정기를 입었을까? 살짝 데치면 푸른색이 되니 본래 푸른색일까 아니면 뜨거운 물에 놀라거나 멍들어서일까? '풀'은 '푸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텐데 바다의 풀이 마냥 푸르지만은 않은 이유가 광합성에만 있을까. 사전에서는 '푸르다'의 어원이 '풀'에 있다고 말한다. 푸성귀니 푸새니 푸초니 하는 낱말들을 그 근거로 내세운다. 풀의 15세기 표현은 '플'이다. 17세기 원순모음화 영향으로 '풀'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풀'의 어원이 '푸르다'에 있다고 생각한다. 항용 인용하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청색과 남색의 비교라고나 할까. 쪽풀에서 뽑아낸 푸른색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니 청색과 남색의 뿌리가 같다. 실제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권에서는 초록과 파랑을 크게 구분하지 않았다. 15세기를 전후한 '푸르하다'와 '파라하다'의 분화가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똑같은 것은 아니다. 짙푸르고 높푸르며 검푸르고 얕푸른 것이 다르다. 푸르딩딩, 푸르스름, 푸르작작, 희푸르고 얄푸르다. 그래서 뒤꼍의 채소와 깊은 산속의 채소가 색깔이 다르고 얕은 바다와 깊은 바다의 해조류 색깔이 다르다. 뭍과 물의 채소와 해조(海藻)들을 채취하여 삼색나물이니 오색나물이니 의미를 부여하고 각종 의례음식들을 장식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해초류와 해조류가 이루는 바다숲과 바다밭

해초(海草)는 바다에 뿌리를 내려서 서식하는 종자식물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바다의 풀이라는 뜻이다. 내 고향에서 '진줄'이라고 하는 '잘피'가 그 중 하나다. 해조(海藻)와 구분하기 위해 초(草, 풀)를 붙인다. 반면에 해조류(海藻類)는 물속에 살면서 엽록소로 동화작용을 하는 은화식물을 말한다. 은화(隱花) 즉 꽃을 숨긴 식물이라는 뜻으로 조류(藻類)를 포함해 선태식물, 양치식물 따위가 해당된다. 뿌리, 줄기, 잎이 구별되지 않는다. 꽃이 피지 않는 것은 물론 포자에 의해 번식한다. 녹조, 갈조, 홍조로 나눈다. 서식하는 깊이를 가지고 분류하기도 하지만 색을 통해서 분류하기도 한다. 색이 다른 것은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드는 정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녹조류는 연안지역 5미터 정도, 수심이 얕은 곳에 산다. 투과력이 약한 적색광을 광합성에 이용한다. 파래나 청각, 매생이 등이다. 홍조류는 수심이 깊은 곳에 산다. 근해지역 15미터 정도, 투과력이 강한 청색광을 광합성에 사용한다. 김, 우뭇가사리 등이다. 갈조류는 녹조류와 홍조류 중간 깊이에서 산다. 원해지역 15미터 정도, 톳, 다시마, 미역, 대황, 모자반 등이다. 지난 2018년 본 지면을 통해 톳을 소개하면서 바닷물 층위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남도바다의 해조류를 언급해드렸다. 수심 가장 위쪽의 바윗돌에는 가사리가 서식한다. 맨 위의 가사리를 불티가사리라 하고 그 아래 수심으로 붙는 것을 세모가사리라 한다. 그 아래 수심으로는 자연산 톳이 서식한다. 톳의 층위에 붙는 해조류로는 모자반(몰 혹은 모자분)과 듬북 등이 있다. 톳 아래 수위로 미역이 붙는다. 가장 아랫자락에는 다시마가 붙는다. 물론 이런저런 양식기술이 발달해 층위가 섞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이런 높낮이 속에서 서식한다. 해조류가 가진 부드러움과 질김의 농도가 이 층위에 따라 결정된다. 해초와 해조가 숲을 이룬 곳을 '바다숲'이라 한다. 바다숲에서 물고기들이 서식하니 '바다밭' 혹은 '바다논'이다. '바다숲'은 '바다'와 '숲'을 떼어 써야 맞다. 아직 합성어로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의 날, 섬의 날, 바다식목일, 심지어는 톳의 날에 이르기까지 기념일들이 제정되고, 갯벌법이 시행되는 등 바다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증진되면, 머잖아 '바다숲'이라 붙여 써야 문법적으로 맞는 날이 올 것이다.

보색(補色)의 대칭, 뭍과 물의 연대

간조기의 썰물, 남도의 바다에 나가보라. 여섯 시간 전에 물로 가득 찼던 바다가 이내 땅으로 변한다. 땅은 땅이되 뭍과는 다른 땅이다. 실핏줄처럼 물길 가득한 갯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풍경을 늘 거꾸로 자라는 나무라고 말해왔다. 뭍과 마주선 물, 산에 대칭되는 바다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명암을 두어 간조의 갯벌을 관찰하면 시어핀스키 피라미드 같은 미세한 프렉탈 문양이 온 갯벌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미명의 새벽이나 황혼의 저물녘이면 명암은 더 도드라진다. 어떤 조물주 있어 이 황홀한 핏줄들을 직조할 수 있단 말인가. 끝 간 데 모르게 광활한 서남해의 갯벌에는 거꾸로 선 큰 줄기와 잔가지와 미처 털어내지 않은 물비늘들이 좁쌀꽃 같이 빛난다. 잔물결을 이르는 우리말 '윤슬'은 틀림없이 이 갯벌의 반짝임으로부터 왔을 것이다. 거꾸로 자라는 나무, 그 숲의 끝이 향하는 곳은 육지다. 풍경만 그러할까. 뭍의 숲과 물의 숲에서 자라는 수목과 해조가 그러하고 그를 기반으로 서식하는 생물 또한 그러하다. 예컨대 해조류에는 한대성 해조류와 난대성 해조류가 있다. 난대성(暖帶性) 해조류는 아열대성 해조류로 주로 제주도와 남쪽바다 중심이다. 한대성(寒帶性) 해조류는 동해, 서해를 포괄하는 중남부 해역이다. 우리나라가 북반부에 속하기 때문에 한대성 해조류가 중심에 있다. 김과 미역이 겨울에 자라고 매생이가 겨울에 자라는 것이 그 이유다. 이유리의 매생이 연구에 의하면, 매생이는 9월 이후 자라기 시작하여 한겨울에 채취를 한다. 4월이 이르기 전 생장이 끝난다. 내륙의 식물들이 수확기를 끝내고 생장을 닫을 시간에야 비로소 북반구 한반도의 바다숲은 태양의 빛들을 온몸에 받기 시작한다. 물의 깊이에 따라 많고 적게 받는 햇빛뿐이겠는가. 적도 상간의 거대한 흑조(黑潮, 크로시오)의 흐름들이 머릿물결 돌려세우며 생장하는 해조들을 애무한다. 그러다 다시 뭍의 수목들 햇빛 받아 깊은 땅의 물 끌어올리기 시작할 때 긴 여름잠의 휴면에 이른다. 그래서다. 색이 보색(補色)에 대하여 반전(反轉)을 이루고 물이 뭍에 대하여 반전을 이룬다. 일의 형세가 뒤바뀌어서도 아니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구르기 때문도 아니다. 주역에서는 이를 대대성(對待性)이라 하고 레스트로비스 같은 인류학자들은 이를 대칭성이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서는듯하지만 대적(對敵)이 아니요, 거꾸로 서있지만 서로를 흠모하여 포옹하는 것이다. 6년 전 갯벌이야기로 이 지면을 처음 시작했던 까닭이 여기 있다. 뭍과 물이 햇빛과 바람으로 직조되고 사람과 자연이 공생이라는 이름으로 교직되는 이 땅에서, 물과 뭍을 반복하는 변증법의 공간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가신 남도의 사람들과 꽃들과 풀들과 아! 잃어버린 레퓨지아의 행간과 여백을 좇기 위한 여정들이다. 남도의 바다는 그런 곳이다. 오늘 남도인문학팁은 졸시로 대신한다.



남도인문학팁

갯벌

이윤선

낮은 개옹 썰물 갱번에는

거대한 나무 한그루 자란다.

바다 깊숙이 뿌리 두고

달을 향한 연모 키우다

사릿발 간조(干潮)때 이르러서야

잔가지들 생육한다.

지상의 숲을 향해 만개하는



뭍의 수목들 잎 피고 꽃피고

가지 치던 계절

찬바람 불어 지상의 꽃들 열매 맺으면

포래, 감태, 모자분, 미역 오만 해조들

비로소 심해(深海)의 나무되어

잎 내고 꽃 피워 숲을 이룬다.



계절 바꾸어 거꾸로 자라는

시어핀스키 피라미드 대칭성 기하학

지상과 해저의 나무들이 말해준다.

나무와 나무가 바꾸어 서고

물과 불이 바꾸어 서는 계절

대대(對待)의 거대한 우주목 따라

비로소 남자와 여자가 바꾸어 선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