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검사 신기술… 5·18 무명열사 41년만 가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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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검사 신기술… 5·18 무명열사 41년만 가족품
5기 유골중 1기 신동남씨 확인||5·18진상규명 핵심 과제 ‘성과’
  • 입력 : 2021. 06.15(화) 18:02
  • 김해나 기자
15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내 묘지 번호 4-90번 무명열사의 DNA 분석 결과 당시 행방불명으로 신고된 신동남(1950년생)씨로 확인된 가운데 유가족이 헌화·참배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41년 동안 이름 없이 묻혀 있던 열사의 신원이 확인됐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15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세미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무명열사 묘역에 안치된 5기의 유골 중 1기(묘 4-90)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전자 검사 사업을 통한 신원 확인은 2002년 이후 19년 만이다. 또 이번 신원 확인은 SNP 신기술을 도입해 확인한 첫 사례여서 5·18 진상규명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인 신원미상·행방불명자 파악에 새로운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41년만에 확인 된 무명열사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총상을 입고 숨진 신동남 씨였다.

조사위는 신씨의 신원 확인과 관련 과학적 검증을 위해 묘지 4-90번의 유전자와 신씨 가족으로부터 채혈한 혈액 유전자를 분석해 대조했다. 그 결과 23개 유전자 중 21개가 일치했다. 또 조사위는 부계에 의한 친족 관계 여부를 확인하는 Y-STR 유전자 검사, 가족관계 여부를 확인하는 SNP 유전자 검사를 병행해 신씨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조사위는 병원 진료 기록, 사망자 검시 결과 보고서 등을 확인해 행방불명 보상신청서 기록과 대조, 무명열사 신원을 파악했다.

또 5·18민주묘지에 안장된 신원미상 5기의 사망자 검시서와 행방불명 신고자 중 나이, 신체 특징, 사망 일시·장소, 사인 등을 분석했다. 병원 진료 기록 중 사망자 관련 기록을 대조해 신원미상자와 신씨의 일치 가능성을 확인했다.

박진언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대외협력과장은 "유전자 검사 사업을 통한 신원 확인은 2002년 이후 19년 만이다. 또 이번 신원 확인은 SNP 신기술을 도입해 확인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며 "과거 조사 방식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이제는 기존 자료에 과학 기술, 합리적·객관적 판단 등을 가미해 더 세밀하고 분석적으로 조사할 것이다"고 말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1980년 항쟁 당시 30살이었던 신씨는 건축업 미장일을 하기 위해 광주역 인근 여인숙에 머물렀다. 5·18 항쟁 기간 첫 발포가 이뤄진 그해 5월20일 여인숙을 나갔다가 총상을 당해 적십자병원에 입원, 수술을 받았다. 이날 광주에 투입됐던 3공수여단의 광주역 발포로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신씨는 복부에 총을 맞아 내장이 파열되고 쏟아질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

긴박한 상황에 병원 측은 그의 이름을 '신동남'이 아닌 '심봉남'으로 잘못 기록했다. 병원 측 관계자가 심각한 상처를 입은 신씨의 발음을 들리는 대로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신씨의 신원 확인이 어려워진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날 적십자병원 간호사의 연락을 받은 동료 이씨가 병원으로 찾아가 수술 후 복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신씨를 만났다.

신씨의 동료인 이씨가 시위에 참여한 뒤 다시 병원을 갔을 때 신씨는 숨져 영안실로 옮겨졌다.

같은 달 22일 시민수습대책위원회가 시내 병원의 사망자 모두를 도청으로 옮겨와 신원을 확인하고 상무관에 안치했다. 조사위는 이때 신씨의 시신도 도청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회는 사망자를 축소하려는 신군부의 '시신 빼돌리기'를 막기 위해 각 병원에 흩어진 시신을 전남도청으로 모았다. 가족들이 시신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 배려였지만, 이로 인해 신씨는 41년간 이름 없이 살아왔다.

이후 신씨는 신원미상으로 분류됐고, 항쟁 당시 구속된 이금영씨의 어머니에 의해 그해 5월24일 상무관에 안치됐다.

신씨는 같은 해 5월29일 망월시립공원묘지 제3묘원 47번 묘에 '이금영'으로 매장됐다. 그 후 6월21일 이금영씨가 상무대에 구금된 채 생존해 있는 것이 확인돼 다시 신원 미상 처리됐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진행된 광주시 '행방불명자 소재찾기 사업'의 하나인 신원미상 11기 유해 유전자 검사 과정에서도 신씨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가족은 없었다. 신씨는 이후 국립 5·18민주묘지에 '무명열사'로 안장됐다.

신씨의 유가족은 "1993년 행방불명자 신청을 했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 후 가족들은 그냥 포기하고 살았다"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신원을 확인해줘 감사하다. 앞으로 잘 모시겠다"고 말했다.

한편 5·18 관련자 보상이 시작된 1990년부터 2015년까지 7차례에 걸쳐 행방불명자 신고자는 242명이다. 이 중 공식 인정된 행불자는 84명뿐이다. 신씨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국립 5·18민주묘지에 남은 무명열사는 4명이다.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