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무력감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취재수첩
언론의 무력감
  • 입력 : 2021. 06.16(수) 14:01
  • 도선인 기자
도선인 사회부 기자.
바뀌지 않는 것들에 관해 대책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계속된 지적, 반복된 관행, 원론적인 해명…. 따위를 받아 적는 일은 그저 무참함의 다른 이름이다.

지난 14일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 참사에서 가장 어린 희생자 고교 2학년 학생의 발인이 엄수됐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부친은 상복조차 갖춰 입지 않은 채 앳된 소년의 사진을 들었다. 그렇게 우리와 다를 것 없는 9명의 광주시민이 곁은 떠났다.

얇은 가림막 뒤에 가려진 재개발현장의 온갖 불법적인 행태는 철거건물 붕괴와 동시에 속속 드러나고 있다. 10억원이 넘는 규모의 철거공사는 하청의 하청을 거쳐 사실상 1인기업인 ㈜백솔건설이 맡았고 그사이 철거공사 비용은 절반의 절반으로 줄었다. 해체계획서도 감리자도 철거현장에는 없었다.

5·18구속부상자회 회장인 문 씨가 학동4구역 주택재개발조합 업체 선정 과정에 조직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경찰이 관리감독 부실 등의 혐의로 철거공사의 최종 인허가권자인 동구청에 압수수색까지 단행한 상황에서 임택 동구청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9일 이전 접수된 안전민원에 대해 "공문도 보냈고, 항의전화도 했고, 현장점검 했는데…"라고 설명했다.

동구는 "현장점검 및 현장점검 업무를 건축물관리 점검기관으로 대행하는 규정은 법적의무 점검대상은 아님에도 민원제기 시 담당자가 수시로 현장을 방문하여 안전관리를 지시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에도 확실한 것은 결국 참사를 단초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진다.

대형참사 피해 유가족들도 똑같음 무력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난 12일 동구 합동분향소를 찾은 세월호 유가족들은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증명하듯 끊임없이 들려오는 죽음에 그만 추모하고 싶다"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먼저 간 아이들을 생각하며 안전한 사회를 위해 7년째 싸워오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이번 참사는 바꿀 수 있다는 신념마저 흔들리게 했다. 할 만큼 했다는 식의 동구청의 태도, 학동 참사 이후 부랴부랴 재개발·개건축 현장을 점검하는 광주시는 얼마나 안일한가.

2022년 다가올 '현대사회에서 벌어진 수많은 참사의 n주기'를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무기력함이 밀려온다. 여전히 별다를 것 없는 내용의 지적기사들이 얼마나 쏟아져야 애꿎은 죽음을 기록해야 한다는 무력한 언론의 책무가 끝이 날까.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