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경력 기사 "학동4구역 철거 상상도 못할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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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17년 경력 기사 "학동4구역 철거 상상도 못할 방식"
경찰·철거업체 설명 들어보니 ||“성토제 기댄 철거 위험 그 자체” ||“철거 ‘재하도급’ 실태파악 우선” ||정·관계 유착 의혹까지 수사확대
  • 입력 : 2021. 06.21(월) 16:10
  • 도선인 기자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돼 지나가던 버스를 덮쳤다. 119 소방대원들이 무너진 건축물에 매몰된 버스에서 승객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철거건물 바로 옆에 정류장이 있는데 도로통행을 막지는 못할 망정 폐 콘크리트 등 건물잔재물까지 쌓아서 성토제를 건물 외벽에 기대다니. 건물이 철거부지 밖으로 붕괴하라고 고사 지낸 격이지요."

17년 경력 철거기사 A씨는 학동4구역 철거건물 붕괴 참사를 가리켜 업계에서는 상상도 못 할 철거방식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밑동파기 방식은 철거현장에서 종종 사용되긴 하지만, 상식적으로 주위에 공공시설 등 위험요소 없는 철거부지 한가운데서만 할 수 있는 방식이지 않겠느냐"며 "이번 참사처럼 인도 바로 옆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성토제를 건물 외벽에 기대는 방식도 애초에 정상적인 방식이 아니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또 다른 철거기사 B씨는 "5층 건물을 철거하는 데 동원된 굴착기 치고는 규모가 맞지 않아 보인다. 상층까지 굴착기 팔이 닿지 않으니 성토제를 계속해서 쌓아 굴착기를 더 높은 높이까지 접근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며 "모두 돈 때문이다. 많은 현장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규모가 맞지 않는 굴착기로 막무가내 철거작업 진행한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 팔 길이 10m인 굴착기가 사용됐지만, 해체계획서상으로 특수 굴착기인 팔 길이 30m인 '롱 붐 암'이 사용됐어야 맞다. 두 장비는 서로 5배 가량 비용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주위 안전까지 고려한 방식이라면, 3층 높이까지 건축잔재물을 몽땅 섞어 성토제를 쌓지 않았어야 한다. 결국, 토압에 의해 건물이 철거부지 밖으로 도로방향으로 넘어지게 했다"며 "특수 굴착기를 5층에 올려 위에서부터 부숴나가면서 특정 방향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고 말했다. 특히 도로방향으로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야 할 철제 와이어도 없었다는 점에서 참사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경찰 역시 건물붕괴 원인으로 반대 방향으로 여러 줄의 쇠줄(철제 와이어)을 걸어야 하는데 공사 당일 이 절차도 무시하는 등 현장에서 여러 안전장치가 전무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불법 재하도급을 거쳐 실질적으로 철거작업을 진행한 백솔건설은 사실상 전문성 없는 무늬만 건설사였다.

백솔건설은 지난해 2월 세워진 직후 한솔기업으로부터 재하청을 받았다. 백솔기업은 같은 해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 면허' 등을 취득하고 수주한 사업도 2건에 불과한 신인이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박자가 안 맞는 회사'라고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광주경찰청은 학동4구역 철거건물 붕괴 참사와 관련 철거업체·재개발조합 사무실, 동구청 등 10여곳에 대해 압수수색하고 철거기사, 감리업체 관계자 등 모두 14명을 입건한 상태다. 경찰은 재개발조합이 철거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정·관계 유착 의혹은 없는지 전방위적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학동4구역 공정별 하청 계약 구조는 △일반건축물(재개발 조합→현대산업개발→한솔→백솔) △석면해체(조합→다원이앤씨→백솔) 등으로 파악되고 있다. 불법 재하도급을 거쳐 이번에 붕괴된 5층 건물의 3.3m²당 해체공사비는 당초 28만원에 4만원까지 줄어들었다.

광주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 소속 박미정 의원은 "건설현장에서 하청에 하청을 거치는 불법적인 방식으로 끊임없이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는 점만 깨닫고 있지, 그때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불법 재하도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태파악이 먼저다. 얼마나 많은 건설현장에서 재하도급이 일어나고 있는지, 평균적으로 얼마나 비용절감이 되길래 하청을 거치는 것인지, 실태파악이 급선무다"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