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재난 대응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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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세종의 재난 대응 매뉴얼
  • 입력 : 2021. 06.22(화) 15:21
  • 이용규 기자
조선왕조실록은 519년의 조선 역사의 타임캡슐이다. 실록에 기록된 재해와 재난은 지진, 가뭄, 수해, 전염병, 화재 등 2만5201건에 달한다. 예나 지금이나 재해는 반복됐음을 알 수 있다. 세종의 위기 대응 프로세스는 단연 돋보인다. 세종은 위기 관리 주요 사항으로 예방, 전문가, 재발 방지책 등을 꼽았다. 첫 째는 재난에 경각심을 갖고 적극적 예방이다. 세종은 평소에 사람이 하늘의 일을 알 수는 없다더라도 사람이 '해야할 일'은 남김없이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큰 비가 내리면 대신들에게 한양을 비롯해 전국에 곧 바로 침수 상황을 확인하고, 수재 발생이 우려되는 곳을 점검하는 지시를 내렸다. 여러날에 걸쳐 비가 내릴 때는 반드시 수재가 있을 것이니, 수문을 열어 물이 통하게 하고 관원들이 밤새 순시토록 지시했다. 위정자로서 재난 예방을 통치 덕목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둘째는 재난·재해 현장에는 컨트롤타워로 최고 전문가를 파견했다. 전염병·기근 등이 발생한 지역에는 그 지역 출신의 수령이나 관찰사를 임명했다. 혹은 해당 분야 업무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대신을 책임자로 발탁했다. 이들에게는 '선조치·후보고'의 재량권을 부여, 현장 중심의 능동적인 대응이 가능케했다. 세 번째는 사고 대책 수립이다. 재난에서는 소를 잃었으면 반드시 외양간을 고쳐야 또 다른 소를 잃어버리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세종의 판단이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 8년(1426년) 2월15일 한성부에서 큰 불이 났다. 한성부 남쪽에서 시작된 불은 경시서(물가 관리 관아)를 비롯해 궁궐 행랑 116칸과 민가 2170호가 전소됐고, 30만여명이 사상자가 발생했다. 개국후 유례없는 대화재였다. 강원도 횡성 강무(임금이 봄과 가을에 사냥하던 의식)차 도성을 비운 세종은 화재 보고를 받고 우선적으로 피해를 입은 백성들에게 식량 공급·부상자 치료·사망자에게 장례비를 지원 등 긴급 구호 방안을 지시했다. 3일 후 궁궐로 돌아온 세종은 어전회의에서 화재 수습책과 방비책 등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케해 정책에 반영했다. 요즘의 브레인스토밍격인데, 방화장을 쌓고 도로 확장, 초가에서 기와로 바꿔 화재 확산을 막게 했다. 종묘와 종루, 경복궁·근정전 등 궁궐에는 화재 진압용 쇠고리를 만들어 비치케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세종은 화재 전담기구로 조선판 소방방재청인 금화도감을 설치해 화재 관련 모든 부처를 집결시켜 유사시 일사분란하게 대응토록 했다. 철저한 예방과 전담 기관에 의한 재난 관리, 재난시 컨트롤타워를 통한 지휘체계 확립과 국가의 총력 대응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용규 논설실장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