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38-2> 떨어지고 끼이고 깔리고 매몰되고 …현장에서 목숨잃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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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38-2> 떨어지고 끼이고 깔리고 매몰되고 …현장에서 목숨잃는 노동자들
안전모 안썼다 60cm에서 추락사 ||신호수 후진하던 트럭에 받혀 숨져 ||안전시설 미흡 붕괴된 흙에 매몰돼 ||광주전남 올해 사고로 20여명 숨져 ||질병재해 사망자까지 더하면 70명
  • 입력 : 2021. 06.27(일) 17:12
  • 홍성장 기자
통계로 보는 2020 산업재해와 아파트 외벽도장 작업 모습. 디자인 서여운·고용노동부 제공
수없이 많은 노동자가 현장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있다. 대부분이 부주의나 총체적 부실 등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인재'다.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친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 참사'와 닮은꼴이다. 법과 제도가 있어도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으면 '공염불'인 탓이다.

●사소한 부주의 탓에

올해 들어 광주와 전남에서 '안전불감증' 탓에 숨진 노동자들은 20여 명에 달한다. 사고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형적인 '후진국형 인재'다.

지난 4월17일 곡성에서 작업 중이던 굴착기에 노동자가 깔려 숨졌다. 숨진 노동자는 전력케이블 지중화 작업 중 후진하는 굴착기에 부딪힌 후 뒷바퀴에 깔려 숨졌다. 역시 허술한 안전관리가 문제였다. 굴착지 작업 반경 내에 출입금지 조치도 없었고, 건설기계의 유도자를 배치해 유도자의 신호에 따라 작업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굴착기의 작업계획서도 작성되지 않았다. 굴착기를 사용해 작업을 할 때에는 작업에 따른 장비의 종류, 성능, 운행경로, 작업방법이 포함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그 계획에 따라 작업을 해야 하지만 작업계획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사고가 났다.

3월17일 광산구에서는 옹벽 벽체 거푸집 설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무너진 흙더미에 매몰돼 숨졌다. 이 사고 또한 '인재'였다. 설계 시 굴착 사면에 대한 지반조사도 없었고 지하 수위나 지층 특성에 따른 적절한 기울기를 적용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다 사고가 났다. 지반 붕괴 위험 방지 조치도 없었다. 굴착 사면의 붕괴로 노동자에게 위험이 미칠 우려가 있을 때는 흙막이 설치 등 위험 방지를 위한 조치를 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사전조사는 물론 작업계획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사면굴착 작업을 할 때는 위험 방지를 위해 사전 조사하고 안전이 확보된 작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 참사'와 닮은꼴이다.

●끊이질 않는 달비계 추락

4월9일 나주에서는 '달비계(건물의 고정된 부분에 지지대를 밧줄로 매달아 놓은 작업대)' 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작업용 밧줄 매듭이 풀리는 바람에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안전대 걸이용 밧줄(수직구명줄)을 설치하고 안전대와 안전모 등 개인 보호구를 착용하고 작업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법규 위반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은 시공 주체가 현장에 반드시 관리감독자를 배치해 지지밧줄 등 재료 결함 유무를 사전에 점검하고, 안전한 작업 방법을 결정해 공사가 진행되도록 하는 등 위험 상황을 수시로 감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있으나 마나 한 법규였던 셈이다.

비단 나주 사고만이 아니다.

같은 달 22일 9시30분께 광주 서구에 있는 4층 규모 근린생활시설 외벽 도장 작업 사전 준비 중이던 노동자가 건물 아래도 떨어져 숨졌다. 원인은 '안전조치 미흡'이었다. 안전난간 등이 설치돼 있지 않은 옥탑 상부에서 작업하면서 추락 방지 조치를 하지 않아서다. 더욱이 숨진 노동자는 안전대나 안전모 등 안전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았다. 숨진 노동자가 안전모 등을 착용하지 못한 까닭은 회사에서 안전모 등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달 19일 완도 건설현장에서 창틀 실리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2층에 떨어져 숨지는 등 올해 들어서만 달비계 작업 중 추락사고로 광주·전남에서 3명의 노동자가 숨졌다.광주고용노동청이 추락사고 예방 수칙까지 발표하고 나선 배경이다.

광주고용노동청은 달비계 추락사가 잇따르자 달비계 밧줄의 고정상태와 수직구명줄 설치 여부, 안전보호구 착용 상태, 모서리 보호대 설치 여부 등을 작업 전에 확인할 것을 강조했다.

전국적으로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통계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 4월까지 최근 5년간 건설업 관련 '달비계'(건물의 고정된 부분에 지지대를 밧줄로 매달아 놓은 작업대)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66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공동주택 외벽공사 작업으로 인한 사망자는 46명으로 70%를 차지했다.

그간 달비계를 사용하는 건물 외벽작업은 공사 기간이 짧고 소규모인 경우가 많아 안전관리의 사각지대라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관리감독자가 없거나 안전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등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어처구니없는 안전사고

'어처구니없는' 안전사고는 수없이 잦다.

3월20일 광산구 모 군부대 내에서는 채 1m도 되지 않는 '말비계(정상에 디딤판이 있는 사다리)'에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도배 작업을 위해 60㎝ 높이의 말비계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중심을 잃고 뒤로 떨어져 뒤편 벽에 머리를 부딪쳐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였다. 안전모만 착용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 그러나 숨진 노동자는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다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 역시 사업주가 안전모를 지급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었다.

5월22일 함평에서도 비슷한 사망 사고가 있었다. 주택 내부 천장 패널 설치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안전난간이 설치돼 있지 않은 이동식비계 작업발판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숨졌다. 이동식 비계의 높이는 불과 1.4에 불과했다.

4월2일 광주에서는 지하차도 개설 공사현장 내 이동 중이던 트레일러에 신호수가 부딪혀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5월30일 진도에서는 농로 포장 공사현장 경사로에서 미끄러지는 콘크리트 믹서 트럭에 근처에 있던 작업자가 끼여 숨지기도 했다.

3월15일 영광에서는 소하천 정비공사 현장 내 교량 교명주(다리 이름을 새긴 기둥·머릿돌·준공표지석)가 떨어지면 인근 작업자를 덮쳐 숨지기도 했다. 4월15일 신안에서는 통신케이블 유지 보수를 하면서 전신주에 오르던 작업자가 부주의로 10m 아래로 바닥으로 떨어져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꾸준히 늘어나는 재해 사망

광주와 전남의 재해 사망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연도별 산업재해 발생 현황' 자료를 보면 2018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광주광역본부 재해 사망자 수는 225명이었다. 2017년202명보다 23명이 늘었다. 2019년에는 204명으로 소폭 줄었지만, 2020년에는 다시 230명으로 26명이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3월말 현재 재해 사망자는 7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9명보다 11명이 늘었다.

전국적인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20년 한해 재해 사망자 수는 2062명으로 2019년(2020명)보다 42명이 늘었다.

재해 사망자 중 사고사망자는 882명으로 2019년보다 27명이 늘었다. 사망 사고자 대부분은 건설업 종사자다. 882명 중 458명(51.9%)이 건설업 종사자다. 특히 재해 사망자는 5인~49인 사업장에서 225명이 재해 사고로 숨졌다.

유형별로는 '떨어짐' 사고사망자가 328명으로 37.2%를 차지했다. '끼임'이 98명(11.1%), '부딪힘' 72명(8.2%), '화재·폭발·파열' 72명(8.2%), '물체에 맞음' 71명(8.1%) 순으로 사고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

홍성장 기자 seongjang.h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