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38-3> 허울뿐인 중대재해법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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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38-3> 허울뿐인 중대재해법은 가라
산재 의무 위반 사업주 형사처벌 ||처벌범위 줄어 “안전불감증 여전” ||검사 입증 ‘인과관계 추정’ 삭제 ||50인 미만 사업장 유예 등 문제도
  • 입력 : 2021. 06.27(일) 17:11
  • 양가람 기자
민주노총 광주지부는 지난 19일 오후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학동 재개발지구 건물 붕괴 참사 장소까지 행진했다. 전남일보 자료사진
산업현장에서 끊이질 않는 재해 사망사고의 대책으로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 처벌을 내리도록 한 법안이다.

법은 이미 제정돼 있고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단계적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 등에서는 '누더기가 된 법'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사업주의 책임범위부터 인과관계 입증 등에 관한 기준이 제대로 정해지지 않아 본래 취지에서 멀어졌다는 이유에서다.

평택항 청년노동자의 죽음, 광주 학동 철거 건물 붕괴 참사로 무고한 광주 시민이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등 중대재해법의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났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다.

●실질적 지배·운영·관리 의미 등 불분명

중대재해법은 기업의 안전관리 의무를 강화해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근절하는 것이 목표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규정하고, 의무 위반으로 인명사고가 나는 경우엔 해당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형사처벌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하지만 처벌대상인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의 범위 등 핵심 내용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아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논란이 빚어질 우려가 크다.

홍관희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현재 중대재해법의 정부 부처간 협의안(정부안)을 살펴보면, 애초 주장해 온 책임자의 의무와 책임 범위가 축소·완화됐다"면서 "먼저 정부 부처는 이사를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이사'로 한정했다. 하지만 안전보건 전담이사가 없는 경우 어떻게 할 지, 재해 관련 대책, 조치에 관해 의사결정을 한 다른 이사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사들을 경영책임자 등에 포함시키는 것은 사후적 처벌보다 '사전적 예방'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부처 의견처럼 처음부터 상당수 이사 책임을 면제할 경우 안전 불감, 생명경시, 비용절감이 우선되는 기업의 고질적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통째로 삭제돼

중대재해법을 발의한 민주당 박주민·이탄희 의원 안에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담겨 있다. 사업주가 산재 발생 이전 5년 동안 3회 이상 안전·보건의무를 위반했거나, 재해 관련 증거를 인멸한 경우 책임을 '추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책임이 없다는 입증을 해야 한다.

정부안에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삭제됐다.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과 형사소송법상 '범죄사실의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는 원칙에 반한다는 게 이유다.

반면 중대재해는 결과를 초래한 직접적 행위보다 구조적 배경을 제공한 행위가 보다 큰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기업에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하다는 비판이 인다.

지난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등 5개 단체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발송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관련 법률 쟁점에 대한 의견서'에도 인과관계 추정 조항의 필요성이 언급된다.

민변은 "이 법상 인과관계 추정 조항의 목적은 모든 중대재해에 인과관계를 추정하려는 게 아니다. 그동안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시정되지 않고 반복적인 중대재해를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문제점과 관련, 경영책임자 등에 입증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사실과 위반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할 것을 정하고 있다"면서 "다만 검사 입증 책임 원칙에 따라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 영역에서만큼은 인과관계 추정조항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50인 미만 사업장 유예 등 허술한 법망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을 유예하는 조항도 문제가 됐다. 정부안에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보건 조처 마련을 전제로 법 적용을 4년 유예하는 방안이 담겼다. 영세업체는 안전의무자나 보건의무자를 두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노동계는 "중대재해법은 범죄에 대한 처벌에 관한 것이므로 유예기간 없이 모든 사업주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반발했다. 2015년부터 2020년 3월까지 전체 사업재해의 79.4%, 전체 사고사망자의 60.1%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홍관희 노무사는 "50인 미만 사업장 4년 유예 통과 시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를 사지로 내모는 죽음의 외주화를 더욱 조장할 것"이라며 "또 법 시행 당시를 기준으로 2년, 4년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 역시 모순적이다. 추후 기업 규모에 변화가 생기더라도 2022년 3월 기준으로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 이를 단속하는 것도 무리"라고 지적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제외된 점도 지적됐다.

생활폐기물처리장에서 파쇄기 끼임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김재순 노동자의 아버지 김선양씨는 "지난해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 10곳 중 3곳이 5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그런데 영세하다는 이유로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제외됐다. 그동안 주장해 온 핵심 내용이 다 빠진 '누더기 법'으로 또 다른 재순이가 나올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중대재해법 개정과 산업재해 사망사고 방지 대책 등을 요구하며 내달 3일 1만명 규모의 전국노동자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한다.

민노총 광주지부 관계자는 "전국노동자대회를 통해 노동자들의 절박한 처지와 심경을 고발하고 토로할 것"이라며 "2미터 간격 유지, 참가자 백신 접종, 미접종자는 선제적 검사 후 참가하는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해서도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2일과 23일 서울시와 경찰은 코로나19 예방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노동자대회를 불허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