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이 초래한 죽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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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이 초래한 죽음에 대하여
  • 입력 : 2021. 07.15(목) 15:52
  • 박상지 기자

인도 갠지스 강가에 있는 힌두교의 가장 성스러운 도시 중 하나인 바라나시에서 한 힌두교 여성이 죽어서 구원을 얻기 위해 아슈람 안에 앉아있다. AP제공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

앵거스 디턴 | 한국경제신문 | 2만2000원

여기 거대한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산업이 발전하고 과학·기술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히 국가 전체의 부가 커진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안에서 국민의 건강 수준이 올라가고 기대수명이 높아지는 것이 상식이다. 기대수명의 증가와 사망률의 하락은 20세기 동안 인류가 이룩한 진보 중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미국은 이 위대한 성취의 증거였다. 그런데, 멈춤 없이 상승 곡선을 그리던 이 지표가 최근 몇 년 전부터 이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내 백인 중 45세에서 54세 사이에 해당하는 백인 연령층의 사망률이 높아진 것이다. 보통 이 시기는 생활과 소득 등에서 가장 안정적인 시기인데 말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2015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과 프린스턴대학교 경제학 명예교수로 보건경제학·노동경제학의 권위자인 앤 케이스는 이 미스터리를 추적한다. 죽어가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죽음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신간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의 공저자이면서 경제학자 부부인 두 사람이 던지는 질문이자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주제다.

두 저자는 1999년부터 2017년 사이 미국 중년 백인층의 사망률에 돌연 반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즉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리던 사망률의 흐름이 계속 유지됐다면 죽지 않았을 백인의 수를 60만 명으로 추정한다. 2017년 사망자 추정치는 15만 8000명인데, 사망자는 매일 대형 여객기 세 대가 추락해 승객 전원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과 같다. 현재 미국에서 죽어가고 있는 이들은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으며, 생산직에 종사하면서 제조업의 부흥과 함께 좋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지만 제조업 경제가 무너지면서 생활의 축이 무너진 사람들이다. 당연히 뉴욕, 캘리포니아처럼 돈과 사람이 모이는 대도시가 아니라 쇠락한 제조업 중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해당된다.

다음 질문, 이들은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될까. 죽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두 저자는 죽음의 원인을 자살,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으로 발견하고, '절망사(deaths of despair)'라고 이름 붙인다. 절망감, 박탈감, 삶에 대한 의미 상실, 미래에 대해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소외감이 이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둘은 이 비극의 참상을 각종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세세하게 보여주는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절망사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간다. 즉, 절망사의 '원인의 원인'으로 파고든다.

관심받지 못한 사람들의 죽음을 세상에 드러냈다는 점과 더불어 죽음의 원인을 정교하게 분석했다는 데 이 책의 미덕이 있다. 심층 원인에 대한 분석은 자본주의 시스템, 사회 구조에 대한 해부로 나아가는데, 경제학 연구방법론에 큰 영향을 끼친 앵거스 디턴과 보건경제학 분야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한 앤 케이스는 소득 불평등·경기 침체 등 경제적 요소에서 절망사의 원인을 찾는 손쉬운 결론과 거리를 둔다. 불평등 등 경제적 요소가 끼친 영향을 배제해서는 안 되지만, 그게 왜 전부가 아닌지 하나하나 논증해간다. 동시에 사회적·문화적 요소를 중요하게 다룬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