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지나간 자리엔 건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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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지나간 자리엔 건축이 있었다
  • 입력 : 2021. 07.15(목) 15:51
  • 박상지 기자
건축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

이상미 | 인물과사상사 | 1만7000원



전쟁은 국가나 힘 있는 세력 사이에 벌어지는 가장 거대하고 극단적인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시대마다 끊임없이 벌어진 전쟁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곤 했으며,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극명히 갈리거나 때로 뒤집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의 민낯과 인간이 겪는 희로애락이 건축물에 자연스레 투영됐다.

승전을 기념하는 전승 기념탑과 개선문, 전쟁의 참상과 아픔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지은 추모관 등이 대표적인 예다. '프랑스 파리'하면 떠오르는 에투알개선문은 나폴레옹이 프랑스가 전쟁에서 승리한 모든 영광을 기리기 위해 또 다른 개선문인 로마의 티투스개선문을 본떠 지었다. 하지만 이 개선문 조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독일군이 그 아래로 행진하는 수모를 당한 바 있다. 에투알개선문의 모델이 된 티투스개선문엔 2000년에 달하는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이 개선문은 로마인에게는 승전의 기쁨이지만, 유대인에게는 세계를 떠도는 기나긴 역사가 시작된 아프기 이를 데 없는 건축물이다.

그런가 하면 이 책에서는 전쟁사의 어두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 제국주의의 그림자도 엿본다. 사실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은 나폴레옹의 야욕과 집착의 산물이었으며,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이집트나 그리스 등의 약탈 문화재로 채워져 자국보다 다른 나라의 유물을 더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우리는 역사책을 통해 전쟁을 단편적으로만 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은 건축물에 숨겨진 역사를 들여다보면, 승전과 패전이라는 결과로 판가름 나는 듯한 전쟁사도 그리 단순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엔 전쟁이라는 극심한 풍파를 이겨낸 건축물이 여럿 등장한다. 성 베네딕토가 설립한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몬테카시노수도원은 무려 5번 파괴되고 5번 재건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지금도 탄흔과 그을린 흔적이 역력한 건축물을 살펴보다 보면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벽과 기둥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하기 때문이다.

건축물은 말이 없지만 이들이 품은 시간의 무게와 울림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인간은 겪을 수 없는 시간이 건축물에 녹아 있어서일 것이다. 저자는 인류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견뎌낸 건축물을 통해 모색해볼 수도 있다며, 전쟁에서 생존한 건축물을 말하는 이 책이 오늘날 우리가 부딪혀야 할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는 나침반이 되어주길 희망한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