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정찬호> 노동조합 욕먹이는 '아파트 진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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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정찬호> 노동조합 욕먹이는 '아파트 진상들'
정찬호 광주시비정규직지원센터장
  • 입력 : 2021. 07.22(목) 13:13
  • 편집에디터
정찬호 광주광역시비정규직지원센터장
지역에서 아파트경비노동자사업을 하다 보니 아파트입주자대표자회의(입대의)를 대면하는 일이 잦다. '입대의'라 하면 회장, 동대표, 감사로 구성되며 공동주택관리법과 각 아파트 관리규약에 입각해 운영된다. 법령과 규약에 입각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겠거니 하지만 매월 걷히는 관리비 사용문제나 주민들 의사 수렴 등 생각보다 복잡하다. 각종 아파트 개보수공사는 관련 업체들의 로비 대상이 돼 잡음이 끊이지 않으며 입대의 대표에게 지급되는 판공비도 결코 적잖은 액수다. 그러다 보니 입대의 운영과 자리를 둘러싼 입주민들끼리의 고소·고발이나 폭행 사건도 심심찮게 터지곤 한다. 대다수 입주민들은 직장생활에 여념이 없고 고지서에 관리비에만 관심이 높다. 아직까지 아파트는 입대의 대표가 누구인지, 입대의 성향이 어떠한지에 따라 분위기가 좌우된다.

즉 입대의와 관련관 공동주택관리법과 관리규약에 대한 이해나 회의진행 등 조직운영의 경험이 어느 정도 뒷받침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결정된다. 그런 활동에 가장 가까운 부류가 단체, 기관, 기업체 등을 관리하거나 운영해본 경험자들이다. 노조 활동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예전 어용노조 시절과 다르게 노동조합은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나름 형식과 절차에 충실한 것이 오늘날 노동조합이다.

입대의 대표들 중 생각지도 못한 진상들이 있다. 대기업노조 간부 출신들이다. 이들은 입대의에 참여중인 자기네 노조원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데 무슨 문제 될 게 있을까 하겠지만 이들의 목적이 불순하기 짝이 없다. 관리비를 교묘히 빼먹거나 관리사무소 직원들을 말 못하게 잡는 방법을 공유하고 자기 아파트에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아파트 관리소장들 세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노조는 집행부니 대의원이니 하면서 체계화된 감시의 눈초리라도 있지만 아파트는 노동조합에 비하면 무풍지대나 다름없다. 대기업 노조 간부 출신이라면 입주민들도 "노조 간부 경험을 살리고 자기 집인데 잘 하겠지"라며 이의 없이 동의 해준다. 그러나 입주민들의 기대는 내팽개쳐지고 관리 노동자에 가해지는 유무형의 갑질은 "배운 놈이 더 한다"는 식이다. 그렇지 않아도 노동조합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은 데, 노동조합을 욕먹이는 부끄러운 행태다.

아파트는 대다수의 노동자와 가족들의 휴식처이며 생활 공간이다. 노동자의 미래와 뗄래야 뗄수가 없다. 노동자들의 단결과 집단적 동질성을 형성하는 데 결코 적잖은 기반이 될 수 있다. 각국의 노동 운동사, 진보운동사는 이를 증명 해준다. 대기업 노조 간부 출신들이 노동운동을 귀족으로 변질시키고 생활공동체까지 흙탕물 튀게 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입대의 대다수는 퇴직자들로 구성돼있다. 직장생활 하면서 이중으로 일하는게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 퇴직자 노동조합 결성 소식도 들리고 아파트 경비원 노동조합도 등장하고 있다. 퇴직자 노조의 경우 노조원들의 활동 범위로 아파트 입대의 사업을 추진해보면 어떨까 싶다. 노동조합들도 입주민인 조합원들에게도 아파트 입대의의 역할과 운영, 관리비 문제, 관리노동자에 대한 갑질 근절 등을 교양하고 안내해야 한다. 아파트 문제가 임금교섭이 아니라서,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서 쉽지는 않다. 그러나 민주노조 운동은 공장 담벼락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지난 시기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를 대대적으로 조직한 경험도 있다. 노동운동은 담벼락을 뛰어 넘어 지역과 고통받는 민중과 연대할 때 더 강해지는 법이다. 입주민끼리 소통하고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며 관리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하고 갑질 없는 아파트를 조성하는 일, 바로 민주노조 정신에 입각한 '민주아파트공동체'가 아니겠는가.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