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정연권> 무궁화와 능소화를 보며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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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정연권> 무궁화와 능소화를 보며 드는 생각
정연권 구례군도시재생지원센터장
  • 입력 : 2021. 07.28(수) 14:59
  • 편집에디터
정연권 구례군도시재생지원센터장
구례 합명주조장에 무궁화 신품종을 심었다. 지난봄 전남도삼림자원연구소에서 분양받은 새영광, 샛별 등 신품종이다. 며칠 전 첫 꽃이 피더니 날마다 피고 지며 기쁨을 안겨준다. 고적한 담장에는 주황빛 능소화가 하늘 향해 위엄 있게 피어오른다. 화려한 석양빛과 그리움에 지쳐서 떨어지는 꽃봉오리가 가련하면서 화사하다. 두 꽃을 보며 사유의 시간을 가져본다.

무궁화는 대한민국 국화로 '영원히 피고 또 피어 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등장한다. 그러나 무궁화를 대한민국 국화로 지정한다는 법적 근거가 없다. 통념적으로 국화로 인식돼 있다. 국회에서 수차례 입법 했으나 아직도 계류 중이다. 진딧물이 많고 예쁘지 않은 꽃으로 치부되고 있다. 나라꽃이라고 의무적으로 심지만 관리는 미흡하다. 현실적으로 정원에 심고 가꾸는 사람은 극소수다. 벚꽃에 열광하고 장미의 현란함과 수국의 탐스러움에 감탄한다. 국화에 탄복하며 즐기는 사이 여름에 홀로 피고 지는 무궁화는 관심이 적다. 그저 "아! 피었네 나라꽃" 정도다. 비료를 주거나 병해충 방제를 하지 않으면서 벌레가 많다고 싫어하고 타박한다.

더 문제는 무궁화를 작고 초라한 나무로 생각한다. 울타리나 가로변에 밀식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가. 무궁화는 큰 나무로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 강릉시 방동리 천연기념물 제520호와 백령도 제521호가 이를 증명한다. 수령이100년이 넘고 키도 5m이상이다. 작은 나무로 전략한 것은 일본의 무서운 전략이 있다. 강점기 때 좋은 품종은 불태워 없애고 원줄기의 생장점을 자르는 전정을 하여 작은 키에 울타리용으로 전략시켜 버렸다. 해방 후 그대로 따라하다 보니 오늘날 이런 상황으로 전락했다.

고려시대 무궁화를 본떠 어사화로 사용 했다면 조선시대는 능소화였다. 어사화는 과거급제자에 씌워주는 종이꽃이다. 왕조가 바뀌니 어사화도 바꾼 모양이다.

조선시대 어사화인 능소화는 통꽃이 떨어지는 꽃으로 기품 있고 점잖으면서 단호한 절개의 꽃으로 사랑받아 왔다. 이름 유래가 업신여길 능(凌)에 하늘소(霄)로 하늘을 업신여기는 교만한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찌 하늘을 업신여기며 피었다는 말인가. 어찌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다. 하늘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스레 피어나는 꽃이란 뜻이다. 하늘은 백성이고 민심이다. 사대부들이 교만과 욕망의 이기심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꽃이었다. 그런 의미로 양반꽃 이라고도 불렀다. 꽃송이가 시들지 않고 통꽃으로 떨어지는 단호함과 나팔모양의 꽃처럼 백성의 소리를 잘 듣고 대변해주라는 의미였으리라. 들을 청(聽)은 '귀(耳)'로 '임금(王)'에게 이야기를 듣듯이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것이고, '열(十)'과 옆으로 누운 '눈(目)'은 열개의 눈으로 바라보며 살피라는 의미이며 '한(一)'과 '마음(心)'은 한 마음으로 백성의 이야기에 공감하라는 뜻이다. 관청(官廳)은 백성을 소리를 잘 들으라는 집을 말하는데 '엄호(广)'에' 들을(聽)'로 돼 있다.

조선 초기 양반들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선비정신을 지녔다. 그러나 세도정치가 되면서 왕권이 약화돼 매관매직이 성행하며 변질돼 갔다. 능력 보다 줄서기와 돈이 중요한 척도요 평가의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종묘사직과 명예를 지키며 백성을 위하는 선비정신은 망각돼 버렸다. 자신의 출세와 가문에 명예를 지키고 부귀영화와 신분을 대물림하려는 이기심과 욕망으로 집안에 심었다. 백성들이 심으면 불경죄로 곤장을 쳤다고 하니 고결한 선비정신의 꽃이 양반들만 잘 살겠다는 이기심과 탐욕의 꽃으로 변질된 셈이다.

무궁화 꽃말은 '일편단심' '영원'이며 능소화는 '명예' '기다림' 이다. 백성을 하늘처럼 두려워하며 사랑하고, 선비의 기개와 절제심으로 교만하지 않으며 명예를 지켜야 한다. 명예는 백성들에게 일편단심이어야 한다. 권력자를 향한 일편단심이 아니라 백성에 대한 일편단심을 소망한다. 지배자들이 만든 지엄한 윤리와 법을 내세운 통치가 아니라 화합과 소통, 따뜻한 사랑을 베풀기를 원한다. 사람과 사람의 정이 가득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기다려본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