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유순남> 세상에 버릴 사람도 버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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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유순남> 세상에 버릴 사람도 버릴 것도 없다
유순남 수필가
  • 입력 : 2021. 07.25(일) 16:45
  • 편집에디터
유순남 수필가
진도 지산면에는 동석산이 있다. 팽목항으로 가는 길 오른쪽에 튼실한 아이들이 둘러앉아 놀고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는 산이다. 산에 올라 바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월출산과 수락산의 위엄이 있고, 바위를 오르내릴 때는 팔영산과 관악산의 스릴이 있으며, 완만한 흙길에서는 무등산과 조계산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완도 보길도 격자봉을 걷는 듯 호젓한 동백 숲길을 지나면 임도와의 갈림길에서 소소히 불어오는 바람에 맺혔던 생각들이 씻은 듯 사라진다.

이렇게 많은 산을 품은 듯한 동석산은 불과 해발 219m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큰애기봉 전망대'에 올라서면 사방팔방이 확 트여 진도의 바다와 육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100대 명산에 들지 못한 것은 단지 낮은 높이 때문인 것 같다. 동석산 바위는 멀리서보면 부드러운 곡선인데 가까이가면 표면이 까칠까칠하다. 그런 바위들이 땅 위에 있었다면 쓸모가 없어서 버려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산 위에서는 매끄럽지 못한 점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아 등산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멀리서 보기에는 부드럽고 등산하는 데는 안전하니 그 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지난 장마 때 진도에 폭우가 내려 물난리가 나고 여기저기 산사태가 난 즈음의 일이다. 본교에서 수업하는 날이었다. 점심식사 후 들길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음식쓰레기 처리하는 곳을 지나다 급식소직원의 통화내용을 듣게 되었다. "그래, 풀도 다 쓸모가 있다네. 그래서 어른들이 장마 전에는 제초작업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 사연을 들어보니 통화하는 상대는 산 아래동네에 사는데, 제초작업을 한 산언덕은 흙더미가 무너져서 그 아랫집을 덮쳤고, 바빠서 제초작업을 하지 못한 곳은 흙이 내려오지 않아 무사했다고 한다. 아무 쓸모없다고 생각한 풀이 집을 구하고 사람을 구한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분교 뒤 언덕은 작년 봄까지 시누대숲이었다. 그런데 대숲에서 사는 뱀과 지네가 학교에 자주 출몰하여 시누대를 뽑아내고 담 위에 시멘트를 발라 철조망과 뱀 방지 망을 쳤다. 그 후 그 빈 땅에 칡넝쿨과 환삼덩굴이 번지기 시작했다. 칡넝쿨은 산림을 해치는 대표적인 식물로 산림청에서 골치를 앓는 식물이고, 환삼덩굴은 환경부의 생태교란식물로 지정되어 있다. 환삼덩굴은 ​줄기나 잎의 잔가시에 긁힐 수 있어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 식물이다. 더 나쁜 점은 칡넝쿨과 마찬가지로 다른 식물을 가지로 말고 잎으로 덮어서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하거나 죽게 한다. 이렇게 타 식물에는 원수 같은 환삼덩굴과 칡넝쿨이 이번 장마에 흙을 내려가지 못하게 잡아줘서 학교에는 다행히 피해가 없었다.

지금도 학교에는 지네와 뱀이 가끔씩 출현한다. 뱀은 주로 새끼들이다. 몸통은 가늘어도 그 길이는 길다. 알고 보니 이곳은 구렁이가 유명하단다. 구렁이는 독이 없어서 다행이다. 그래도 필자는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느 날은 김 선생 관사 현관 앞까지 침입했다. 그녀는 놀라기는커녕 막대기로 풀숲 쪽으로 인도하는데, 그 놈이 화가나 머리를 세우는 것을 보고 "귀엽지 않아요?"하며 웃는다. 다행히 필자 관사 현관 앞에는 계단이 몇 개 있어서 뱀이 오르기에는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다시 눈에 띌지 모를 일이다. 생각만 해도 몸이 오싹하지만 생태계에 필요한 존재니 살벌한 동거라도 해야지 달리 방법이 없다.

노자 27장에 '무기인 무기물(無棄人 無棄物)'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그 무엇도 버릴게 없다는 말이다. 무생물이나 동식물은 쓸모없는 것이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가끔씩 다른 사람을 해치고 나라를 망치는 사람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너무 악랄하게 사기를 친 사람, 너무 잔인하게 살인을 한 사람 혹은 어린아이나 여성에게 성폭행을 한 사람 등은 원시시대처럼 그와 똑같거나 상응하는 벌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노자의 말이 맞는다면 큰 원한도 없이 혹은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는 사람은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노자에게 묻고 싶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