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저유부(舌底有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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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설저유부(舌底有斧)
  • 입력 : 2021. 08.01(일) 15:25
  • 최도철 기자
어쩌자고 날이 이렇게 뜨거운가. 한낮에는 걷는 것조차 힘이 든다. 그래도 오래전 약속이라 가까이 지내는 스님을 뵈려 길을 나섰는데, 땀은 흐르고 다리는 후들거리니 죽을 맛이다. 바람소리, 물소리가 등을 떠밀어줘 가까스로 산문에 들어서니 어서 오라는 듯 풍경소리가 먼저 반긴다.

절집 마당 능소화 담장아래 석간수 한 모금. 흐트러진 정신줄을 여미고나니 어디선가 경 읽는 소리가 청청하게 들려온다.

불가(佛家)에서 널리 게송되는 경문 중에 천수경이 있다. 천수경 독경은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는 참된 말,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으로 시작한다. 구업(口業)에는 욕하는 말(악구·惡口), 거짓말(망어·妄語), 한 입으로 하는 두 가지 말(양설·兩舌), 비단같이 교묘하게 꾸미는 말(기어·綺語)을 네 가지 나쁜 말로 규정하고 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게 어디 경문뿐이겠는가. 동서고금을 통틀어 현인들의 잠언이나 지혜서, 생활에서 우러나온 격언과 속담에도 부지기수다. 그만큼 언어는 무섭고, 내뱉은 말은 다시 거둬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아직 수개월이나 남았지만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정치판이 갈수록 난장판이다. 포털에, SNS에 '하류 정치꾼'들이 토설하는 거칠고, 조악한 막말이 가득하다. 변절과 야합, 탐욕의 무리들이 권세의 완장을 취하려 벌이는 술수와 역리가 판을 친다.

'정치는 9할이 말'이라고 하지 않던가. 정치의 영역에서 품격있는 언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음에 늘 새겨야 할 경구 중에 설저유부(舌底有斧)가 있다. '혀 밑에 도끼가 있다'는 말이다. 한마디 말로 남을 해할 수 있으니 언행에 신중하라는 의미이다. 정치인이든, 소시민이든 누구나 혀 밑에 '도끼'를 품고 사는 건 매 한가지이다. 그러나 혀를 잘 쓰면 도끼가 될 일은 없다. 세치 혀로 남도 해치고, 나도 설화(舌禍)를 입는 사례를 역사를 통해 수없이 봐왔지 않은가. 말은 그 사람의 인품을 닮는다. 저급한 막말의 성찬은 결국 파멸의 길로 이끌 뿐이다.

현대는 여론의 시대다. 중론과 공론의 시대다. 공인(公人)들, 특히 유력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내년 대선은 '인물 평가 중심 선거'가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별의 순간'을 잡으려는 무리들은 먼저 혀 아래 도끼를 잘 간수하시라. 언책(言責)과 언품(言品)의 가치는 만고불변이다.

최도철 기자 docheol.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