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57> 선진국의 위엄 그리고 New Yorker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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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57> 선진국의 위엄 그리고 New Yorker라는 의미
2021년 여름 뉴욕
  • 입력 : 2021. 08.12(목) 15:28
  • 편집에디터

바셀. 차노휘

맨해튼 거리를 걷다보면 무료 코로나 검사 부스를 종종 본다. 나도 검사를 한번 받아볼까 하다가 검사 받고 기다리는 그 초조한 시간이 싫어서 그냥 지나치곤 했다. 사람이 많은 타임스 스퀘어 같은 곳에는 부스 두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자연사 박물관 내에서는 백신 접종 부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코로나와 관련된 부스를 발견할 때마다 기록 삼아 사진을 찍어 두었다. 부스를 확대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부스 운영 홈페이지 주소를 발견했다. 검색해보니 유료인 CtiyMD와 달리 어떤 코로나 검사도 무료이다. 친절하게 센터 몇 군데 주소와 영업시간까지 적어 두었다. 이곳에서 검사받고 안전 귀국한 한국 사람들이 꽤 있다는 블로그 소개글이 있었다.

뉴욕은 다양한 얼굴이 상존한다. 예약하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은 의료 센터가 있는가 하면 전액이 무료인 곳이 있다. 주거지 또한 원룸에 한 달 월세가 3000달러인 곳이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정부 아파트가 있다. 정부 아파트는 주로 갈색으로 겉모양을 구분하고 주로 흑인들이 거주한다.

롱아일랜드시티에서 바라본 맨해튼 풍경, 차노휘

며칠 전 브루클린 박물관을 방문하고는 프로스펙트 공원을 걷다가 그랜드 아미 플라자 옆 브루클린 공공도서관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도서관 건물 입구가 금장식물로 된, 흡사 이집트 박물관과 같았다. 건물 앞 광장에는 파라솔 아래에서 휴가 나온 사람들처럼 책을 읽으면서 여름 한낮의 더위를 쫓고 있는 듯 여유로워 보였다. 교차로에는 푸드 트럭과 공연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공공도서관 내부는 대형 대학도서관처럼 규모가 컸다. 에스컬레이터 등 편리 시설, 각 코너마다 사람들이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와 책상, 어린이 도서관에 들어갔을 때는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그림이 벽 가득 채워져 있어서 미술관에 온 듯했다. 무엇보다도 화장실에서 섬세한 배려를 발견할 수가 있었는데 출입구 옆에 설치된 자판기에서였다. 자판기 손잡이 옆에 'Free'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호기심에 손잡이를 당겨보았더니 템포 두 개가 나온다. 너무 신기해서 다시 해보니 또 나온다. 맨해튼 2시간 주차요금이 60달러 정도. 그것도 주차할 장소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먼저 주차할 장소를 예약하고 주차해야 한다. 이렇듯 물가가 비싼 곳이기도 하지만 선진국의 위엄인 듯 생필품은 의외로 싸다.

타임스 스퀘어. 차노위

선진국의 위엄은 수많은 박물관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각 보로마다 박물관이 있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지구상의 모든 것들을 전시해 놓은 듯한 자연사 박물관, 세계 현대 미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모마(MoMA), 미국 현대 미술을 관람할 수 있는 휘트니 미술관 등.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길거리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길거리 공연도 종종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전시장은 맨해튼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NYC 페리를 타고 루스벨트아일랜드에서 Wall Street까지 갈 때 보는 맨해튼의 건축물들. 롱아일랜드시티에서 조깅하면서 바라보는 맨해튼의 야경. 제각각 독특한 디자인이어서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 된다. 이 아름다운 빌딩은 밤이 되면 눈이 더 부시다.

빌딩 숲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맨해튼 한가운데에 공원이 있다. 이들이 센트럴 파크를 왜 뉴욕의 오아시스라고 부르는지 구겐하임 미술관을 갔다가 공원을 걸으면서 절실히 느꼈다. 잔디밭과 울창한 숲으로만 이루어진 곳이 아니라 군데군데 호수가 있고 호수에서는 카약을 타는 사람, 낚시하는 사람, 데이트하는 사람, 혼자서 사색하는 사람 등 제 각자 최고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벨베데레 성(Belvedere Castle)은 전망대 역할까지 했다. 그리고 1947년부터 운행되고 있다는 관광객을 태운 마차까지도. 그곳은 분명 콘크리트 빌딩 숲과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곳 중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섬 중의 섬을 소개하자면 거버너스아일랜드(Governor's Island)일 것이다. 이름 그대로 '주지사의 섬'이란 뜻을 지닌 맨해튼 옆의 작은 섬이다. 그곳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다. 거버너스아일랜드는 여름에만 문을 연다. 배터리 공원에서 페리를 타야 도착할 수 있다. 티켓 요금은 3달러. 왕복 요금이다. 5~8분 정도면 도착한다. 섬 중앙에는 군대 막사 건물을 이용해 학생들의 교육이나 놀이시설로 탈바꿈해서 운영하고 있다. 해먹 그루브, 작은 풀장 등 아기자기하게 잘 가꾸어 놓았다. 이동 화장실과 자판기는 잘 관리되어 있고 오목조목 낮은 둔덕에 올라서면 수풀 사이로 만개한 꽃들을 볼 수가 있다.

2021년 5월 21일에 오픈한 미국 뉴욕 맨해튼 허드슨 강에 있는 조그마한 인공섬도 볼 만하다. 말 그대로 아주 작은 섬인 리틀아일랜드. 백만장자 배리 딜러와 그의 아내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유명한 디자이너 토마스 헤데윅이 디자인한 리틀 아일랜드는 물에 떠 있는 나뭇잎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독특한 형태의 받침대가 특징적이다. 입장은 오전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가능하지만 사람이 북적거리는 정오부터 6시까지는 방문자 수를 조절하기 위해서 온라인 예약을 한 사람만 들어갈 수가 있다. 거버너스아일랜드가 피크닉을 즐기기 위한 장소라면 이곳은 커피 한 잔 들고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공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쉼터이다.

거의 50일 간 머무르면서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내가 뉴요커라는 의미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 것은 지하철을 탔을 때이다. 다양한 인종들이 그곳에 섞어서 앉아 있다. 머리 스타일도 옷 입는 것도 다르다. 하지만 한 공간에 각자의 목적지를 위해서 함께 공존한다. 그렇다면 뉴요커라는 것은 다양성 즉 다양성을 창조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지금껏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뉴욕이 오늘날까지 '잘' 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이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거버넌스아일랜드에서 바라본 맨해튼 풍경. 차노휘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