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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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나의 살던 고향은
김성수 정치부장
  • 입력 : 2021. 09.22(수) 16:25
  • 김성수 기자 sskim@jnilbo.com
김성수 정치부장
가족의 소중함이 와닿고, 애틋함이 커지는 명절, 고향 길을 향하는 마음은 다들 한결같다.

명절은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안부 전화도 못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고, 늘 그립고 보고 싶은 부모님과 가족을 모처럼 편히 볼 수 있는 기회다.

고향에서 함께 자라며 추억을 만들었던 친구들과 지인들도 볼 수 있다. 도시의 무미건조한 삶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는 순간일 것이다.

험난한 귀성·귀경길도 마다않고 명절만 다가오면 귀소본능이 발동하는 건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래서 늘 그리운 부모님 품 같은 고향은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 그 맛! 왁자지껄했던 풍경을 간직한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갈수록 고향의 온기는 시들어가고 있어 아쉽다.

물장구치던 개울가, 정담을 나누던 마을 정자, 송편과 인절미 한 조각 함께 나누던 이웃들은 어디에도 없다.

필자 역시 고향을 떠난 한사람이다. 필자는 유치원 초·중학교까지 고향인 곡성에서 보냈고, 대학을 다니기 위해 거처를 옮긴 후 거의 대부분의 세월을 광주에서 보냈다. 이제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니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에서 보다 광주에서 지내온 세월이 더 많아졌다.

누구나 아는 동요인 '고향의 봄'은 '나의 살던 고향은~'으로 시작한다. 작가 이원수가 쓴 동시 '고향의 봄'을 그대로 옮겨놓은 가사다. 경남 양산에서 출생한 작가 이원수는 이 동시를 열다섯 살에 지었다고 한다. 이원수는 어린 시절 창원, 마산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보냈다고 한다. 그는 동시를 쓰면서 어린 시절 살던 장소와 그 곳에서의 추억을 떠올렸던 것 같다. 자신의 고향과 유년시절을 그리워했던 동시는 1935년 작곡가 홍난파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생이별하고 분단의 아픔으로 고향을 갈 수 없는 실향민, 가난과 정치적 혼란을 피해 멀리 타국으로 이민을 가야 했던 분들, 공부, 직장, 꿈을 위해 큰 도시로 떠난 사람들에게 모두 '나의 살던 고향'은 그립고 아련한 곳이다.

명절에 가족조차 마음 편히 만나지 못하는 요즘. 고향에 대한 향수가 더욱 짙어지는 코로나 19 상황에서 두 번째로 맞는 올 추석이 이렇게 저물고 있다.







김성수 기자 sskim@jnilbo.com seongsu.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