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식 문화'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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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보양식 문화' 단상
도선인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1. 10.05(화) 15:06
  • 도선인 기자
도선인 사회부 기자


 컨테이너를 만드는게 직업인 아버지는 여름나기가 늘 고역이었다. 땡볕에서 일을 하느라 땀을 비오듯 흘리셨기 때문이다. 어릴 적 유난히 더웠던 어느 여름날, 아버지는 흉물스러워 보이는 고기 한 덩이를 집에 돌아오는 길에 들고 오셨다.

 아버지는 손수 고기를 구워 김이 모락모락나는 갈색 고기 한 점을 나에게 건넸다. 아버지는 소고기라고 말씀하셨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그 고기의 정체는 성인이 되고서야 알 수 있었다. 어른들이 여름철 보양식으로 즐겨먹던 '개고기'였다.

  아버지와 함께 사슴농장에 갔던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농장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않아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고 '푸드덕' 산새들이 날아갔다. 얼마후 아버지는 시뻘건 피가 가득한 그릇이 들고 와 먹으라고 재촉했다. 이걸 먹어야만 미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사슴을 도축하기 위해 총을 쐈던 것이다. 그 시절은 그랬다. 보양식이 귀했기에 개·사슴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개식용 금지 검토'를 발언했다. 지역의 동물단체 관계자들도 "'개식용 종식'의 첫 발걸음을 뗐다"며 적극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전 세계 몇 안 되는 '개를 먹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한국에서의 개고기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모호한 위치에 있다. 개고기는 축산물 위생관리법과 그 시행령에서 다루는 가축 범위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치구의 축산업무 관련 담당자는 관할 지역에 있는 개농장을 파악하지도 않는다. 사실상 사유지에서 식용 목적으로 개를 키우는 행위는 법테두리 밖에 있다. 다만 개농장은 동물보호법, 식품위생법, 분뇨처리법 등으로 제재할 수 있는 소지만 있다. 하지만 동물학대로 볼만한 정황들이 곳곳에 넘쳐나기 때문에 자치구에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특수성을 감안할 때 한국의 '보신탕'을 무조건 야만적이고 혐오스러운 문화라 치부하기에는 섣부르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잔인한 도축과 비위생적인 개고기 유통과정마저 용인될 순 없다. 이제 갈수록 '보신탕집' 간판을 내건 식당을 보기가 어렵다. 반려인구가 늘어나고 인식이 변화한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필자의 사견이지만 보신문화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갈수록 보신으로 개를 먹는 사람들이 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생업으로 축견업을 하는 이들의 마음도 헤아려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개고기 식용문화 취재차 만난 개 사육농장주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평생 배운 게 이건디."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