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방관자'들이 만든 어리석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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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방관자'들이 만든 어리석은 비극
  • 입력 : 2021. 10.14(목) 11:14
  • 이용환 기자

지난 2020년 '반평화·반환경 2020 도쿄올림픽 대응을 위한 토론회'에서 나치의 상징인 히틀러와 함께 전범의 상징인 욱일기와 일본 아베 총리 포스터가 내걸려 있다. 뉴시스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페이퍼로드 제공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줄리아 보이드 | 페이퍼로드 | 3만3000원

'독일, 히틀러, 나치, 유대인, 수용소…' 일반인에게 독일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경직되고 부정적이다. 1930년대 나치 독일이 저지른 잔학성에 대한 이미지가 워낙 강렬하고 이에 대한 학습 또한 지속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시 시각으로는 일반적으로 느꼈던 일상과는 다른 독일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은 학생, 정치인, 음악가, 외교관, 운동선수, 시인, 공산주의자, 관광객 등이 남긴 일기와 편지 같은 수십 명의 기록을 통해 나치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이들 중에는 작가 새뮤얼 베케트, 자동차왕 헨리 포드, 시인 타고르,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 생리학자이자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 등도 들어있다. 이들이 보고 느낀 것은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각각의 조각이 모여 완성된 퍼즐은 당시 독일의 전체상을 보여준다.

당대인이 주목했던 독일의 형상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민주주의가 퇴조하고 실업률이 치솟던 시기, 사람들이 일터로 향하고 날마다 새로운 인프라가 들어선 독일은 근면하고 진취적인 새로운 사상의 중심이었다. 나치 체제 또한 질서와 절도가 있는 효율성 높은 조직이었다.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마저 국민의 자부심을 회복시킨, 영감이 가득한 지도자이자 실존하는 초인으로 각인됐다. 한적한 중세도시와 깨끗한 마을, 청결한 호텔, 인심 좋은 주민, 아름다운 바그너 음악, 시원한 맥주 거품도 독일을 매력적인 관광의 나라로 유혹했다.

이같은 결과는 오늘날 중국을 찾는 대다수가 티베트의 인권 탄압을 거론하지 않는 것처럼 당시 독일을 여행했던 이들도 잔인한 폭력과 반(反)유대주의의 실상에 눈을 감았기 때문에 만들어 진 것이다. '때로는 보고도 못 본 체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어쩌면 모두 '역사의 목격자'였지만 진실을 직시한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악명 높은 분서 행위조차도 '마르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전통이며, 사람을 타락시키는 책을 불태운 것'으로 미화될 정도였다. 사회적·경제적 상황이 좋아지면 나치의 광기도 자연히 줄어들 것으로 순진하게 기대했다.

눈앞의 진실을 외면한 것은 평범한 이들만이 아니었다. 히틀러가 극찬한 오버라머가우의 '수난극'을 관람한 5만 명의 미국인 중에는 반유대주의자였던 헨리 포드도 있었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 램지 맥도널드 전 영국 총리도 공연에 감명받았다. 에즈라 파운드와 윈덤 루이스, 크누트 함순, T S 엘리엇, W B 예이츠 등 파시즘에 매혹된 저명한 문인도 나치의 구호에 공감을 나타냈다.

그야말로 황당하고, 어리석고, 비극적인 일이다. 이런 모순이 지금 현실에서도 여전하다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체의 진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저자도 당시 사람을 '황당하고, 어리석고, 아주 사소하면서도, 아주 비극적'이라고 평가한다. '보이지 않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의 차이가 크고 이런 '침묵의 방관자'들이 결국 나치즘의 '공모자'였다는 것도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1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은 과연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1조원이 넘는다는 뭉칫돈이 오갔다는 성남 대장동 게이트나 국가기관이 나서 국기를 문란시킨 고발사주까지. 대선을 불과 6개월여 앞두고도 현안에 침묵하는 많은 방관자에게 이책을 권한다. 정말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진심으로 알지 못하는 것일까.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