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王)자 손바닥'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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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왕(王)자 손바닥' 유감
박성원 편집국장
  • 입력 : 2021. 10.11(월) 14:23
  • 박성원 기자 swpark@jnilbo.com
박성원 편집국장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한자를 꼽자면 단연 '임금 왕(王)'자 일 것이다. 지난 1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방송 토론회에 참석한 윤석열 후보의 손바닥에 '王'이란 한자가 쓰인 게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난데없는 야권 유력 대권주자의 '왕(王)자 손바닥' 등장에 대통령이 되기 위해 미신·주술에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과 비판이 제기됐다.

손바닥 글씨도 우습지만 더욱 가관인 것은 윤 후보 측의 해명이었다. 지지자가 적어줬는데 '임금 왕'자인지 몰랐고, 손가락 위주로 손을 씻기 때문에 지워지지 않았다고 했다. 소가 웃을 일이다. 차라리 '긴장하지 않고 토론을 잘하기 위한 셀프 응원 문구였다' 정도로 말했으면 무속 신봉 논란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王)자 손바닥'과 이어진 궁색한 해명이 지지세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는지 윤 후보는 지난 8일 천태종 대종사 열반 다례법회, 10일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예배 등 종교행사에 잇따라 참석했다. 무속·주술 공세를 방어하기 위한 노력으로 읽힌다.

손바닥에 글씨 쓴 것이 무슨 큰 범죄행위도 아니고, 이번 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이다. 다만 대통령을 봉건시대 백성들 위에 군림했던 왕과 동격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여전하다는 점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여러 대선 주자 중 유독 윤석열 후보만 '대통령=왕'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대선후보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면 국가를 잘 운영하겠다고만 하지, 자신을 선출해준 국민들을 어떻게 잘 섬길 것인지 말하는 이를 보기 힘들다.

세계에서 최초로 대통령제를 도입한 미국은 건국 당시 왕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하는 전제 왕정을 단호히 거부하고, 국민 주권제를 바탕으로 한 민주정치체제를 구축했다. 독립전쟁의 영웅 조지 워싱턴은 황제로 즉위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무찌르고 선출직 초대 대통령에 취임, 임기를 마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다. 왕이 되기를 거부한 진짜 대통령이었다. 워싱턴이 미국의 국부(國父)로 칭송받는 이유다.

대통령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성심껏 봉사해야 하는 공무원이다. 대통령이 되는 게 왕이 되는 것이라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가진 자는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그 누구의 백성이 아닌, 나라의 주인이다.

박성원 편집국장

박성원 기자 swpark@jnilbo.com sungwo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