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이기언> 학부모, 학교를 이끄는 당당한 주체로 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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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광장·이기언> 학부모, 학교를 이끄는 당당한 주체로 서야
이기언 광주광역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교육학박사
  • 입력 : 2021. 10.21(목) 13:28
  • 편집에디터
이기언 광주광역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교육학박사
필자가 국민(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부모의 학교 참여는 주로 어머니들이 학교 행사에 동원되는 활동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봄과 가을 소풍 전날은 학년 대표 학생의 집에 반 대표 어머니들이 모여 음식 장만을 했고, 소풍날 어머니들은 그 음식을 선생님들께 '잔치상'처럼 대접하였다. 교육청 장학사의 학교 순회 일정이 정해지면 또 그 어머니들이 교실과 복도 등 학교 안팎을 청소하느라 학교에 모였다. 교육과정이나 학생의 학교 생활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는 것은 금기시되었고, 자녀가 교사에게 지적을 받기라도 하면 어머니들은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30여 년 전 학교에서 학부모의 역할과 모습은 그랬다.

이후 학교는 많이 변했다. 학교 행사에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했던 어머니들의 자발적인 활동이 늘었다. 과거 교실 청소와 급식 봉사, 횡단보도 앞 안전 지도 등은 자율적인 봉사로 포장되었지만, 사실 의무적으로 참여하여야 하는 활동이었다. 최근의 학부모 활동은 학교의 요청에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교육의 주체로서 학교 운영에 참여를 요청하고, 의사 결정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자치의 모델을 만들고 있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은 2019년 학교자치 조례를 제정하여 교직원과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소통과 배움, 성장이 있는 학교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부모참여팀도 신설하였다. 올해는 학부모 교육 및 학부모의 학교 참여 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교육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학부모의 학교 참여 활동을 지원하고 학교교육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며칠 전 광주광역시교육청은 학부모 자치 활성화를 위한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학부모와 교사가 패널로 참여하여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삶과 마음을 잇고자 하는 자리였다. 패널로 참여한 학부모는 '관심을 갖지 않으면 불신이 생긴다'며 적극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학부모 패널들은 학교 활동에 자주 참여하고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직접 보게 되면서 교사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학부모가 참여하여 교복 착용 관련 학교생활 규정을 만들어 냈던 일,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갔던 수학여행지 답사 중 에피소드, 학부모가 온전히 주인이 되는 행사를 개최했던 학부모 배구대회 경험, 학교 급식실에서 학부모들이 김장을 하고 취약계층 학생의 집에 택배로 김치를 보내주었던 사례, 학부모가 발열체크를 하며 달라진 학교 분위기 등 학부모들이 주체가 되어 진행했던 생생한 경험은 학교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참여자들 모두의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학교를 방문하는 학부모들은 손님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학부모가 교육의 주체라고는 하지만 학교를 찾을 때 매사가 조심스럽고 불편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학교 행사나 학부모 교육, 봉사활동 등을 제외하고 학부모는 상담을 해줘야하는 민원인이나 고객처럼 느껴지기 일쑤다. 교사에게 학부모 상담은 부담스러운 업무의 하나다.

학부모 패널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부분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너무 멀리 떨어지면 얼어버리고 너무 가까이 가면 타버릴 것 같은 관계'이다. 학부모와 교사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 서로가 가지는 부담과 불편함이 덜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회의 보편적 정서로 자리잡고 있는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자녀를 맡기고 있는 학부모가 마냥 쉽고 편하게 교사를 대하기 힘든 구조를 갖는다.

이는 학부모가 가진 역량을 키워 학교의 주체, 공동 주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역할을 했을 때 비로소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자녀를 이해하기 위한 교육 위주로 진행되어 왔던 학부모 교육은, 학교에 대한 이해와 교육의 방향에 대한 인식 등 학부모가 교육의 주체로서 정책의 전반을 점검하고 의견 제시와 요구가 가능한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덧붙여 학부모를 떠올리면 '어머니'로 대표되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아버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 하고, 가족 형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학부모'라는 명칭의 변화도 필요하다. MZ세대로 일컬어지는 80년대 이후 출생 교사와 학부모들이 점차 늘어나는 현상은 이들의 성향을 반영하여 학교 자치를 운영하기 위한 교육부‧교육청 차원의 정책 수립도 요구되고 있다.

제도의 변화는 사람의 변화보다 느리다. 때문에 학부모들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은 교육의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한 추동력이 될 수 있다. 학교를 바꾸고 학교가 속한 마을과 지역을 바꾸어 나가기 위해 학부모의 역할과 권한, 책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