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유순남> 구번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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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유순남> 구번식당
유순남 수필가
  • 입력 : 2021. 10.19(화) 14:18
  • 편집에디터
유순남 수필가
점심식사 후의 산책은 낭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다. 1학기 내내 들길, 하천변 등을 걸어서 오늘은 상가를 걸었다. 시골 면소재지의 상가는 겉모습은 몇 십 년 전 점방 같아도 간판은 재치가 넘쳤다. '로맨스식당'은 데이트 장소가 딱히 없는 연인들을 부르는 듯했는데, '구번식당'은 그 뜻을 쉽게 알 수가 없었다. 가게를 자세히 뜯어보니 건물 위에 있는 간판 위에 양철로 오려 붙여놓은 작은 개(狗)모양이 있었다. 아마 개고기를 파는 집이지 않나 생각한다.

필자는 어렸을 때 무척 약질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특별히 소고기국을 가끔씩 해주어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 어려서 먹은 소고기국이 개고기국이라고 해서 허탈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서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는 않다. 그렇다고 지금도 개고기를 먹는 것은 아니다. 다른 고기도 즐기는 편은 아니어서 균형 있는 영양섭취를 위해 최소필요량을 챙겨먹는 정도다.

지난 9월 25일 김대중센터에서 '더불어 민주당'대통령 경선이 있었다. 각 후보캠프에서는 지지자들이 열렬히 응원을 했고, 어떤 캠프에서는 응원가에 맞춰 춤을 추며 열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응원분위기를 깨는 더 큰 소리가 있었다. "개고기 판매를 금지하는 후보를 반대한다!" 개고기 판매금지가 그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3일 문대통령은 '개고기 식용 금지를 신중히 논의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는 이유는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고, 국가 이미지와 동물 보호차원에서라는 것이다.

필자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반려견을 기른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딱히 기를 이유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반려견에 쏟는 정성과 시간과 물자를 사람에게 쏟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개를 위해서라도 야생으로 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자연주의에 가깝다. 개체수가 많아지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문제를 해결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반려견 기르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개고기를 안 먹는 것으로 국가 이미지를 높이려는 발상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은 물론 유럽도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개고기를 먹었고, 지금도 스페인 북부 지방, 프랑스 남서부의 소수민족인 바스크 족, 심지어는 스위스도 먹고 있으나 관광국이라 쉬쉬한다고 한다. 국가 이미지는 국민의 교양정도, 문화수준, 가치관, 질서유지 등이 중요하지 먹는 음식으로 결정지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동물보호 차원에서 개고기를 금지한다면 소고기나 돼지고기도 안 먹어야 맞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소중하니까. 육식은 물론 생선회도 먹고 꿈틀거리는 낙지와 오도리도 살아 움직이는 채로 먹으면서 개고기는 안 된다는 것은 개를 공동주택에서 기르지 못하게 막는 것보다 더 비논리적이다. 개고기 먹는 사람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지만, 가끔씩 입마개를 하지 않은 개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등골이 오싹해지기 때문이다.

개고기는 예로부터 병약한 환자의 약용으로 쓰였다. 훌륭한 고단백질 식품이고, 지방이 돼지고기나 소고기보다 수십 배 소화 잘 되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불포화지방산은 많고 콜레스테롤은 매우 적어서 동맥경화증과 고혈압을 예방한다고 한다. 본초강목과 동의보감에는 '성질은 따뜻하며 짠맛과 신맛을 내며,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한다.'고 쓰여 있다 한다.

필자는 채식주의자들을 존경한다. 종교 문제로든 환경문제 때문이든 아니면 건강을 이유로든 육식을 먹지 않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더더욱 기호식품을 끊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소고기를 금하는 것도 아니고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도 아닌데, 유독 개고기만을 금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자유민주국가라면 소고기를 먹든 개고기를 먹든 국민각자의 의사에 맡겨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유순남 수필가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