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송태갑>지역학과 지역문화, 그리고 풍경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기고·송태갑>지역학과 지역문화, 그리고 풍경
송태갑 광주전남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입력 : 2021. 10.21(목) 13:28
  • 편집에디터
송태갑 광주전남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역학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꽤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그만큼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 유학(儒學)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선인들의 노력에서 어렵지 않게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요컨대 우리 몸에 맞는 옷을 찾고자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했던 시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과도한 이상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삶을 고려한 학문적 타협으로만 볼일은 아니다.

저마다의 고유문화와 풍토적 철학을 홀대하면서까지 선진문화 혹은 선진문명을 과도하게 추종했던 점을 반성하고 국가 혹은 지역 정체성을 찾아가고자 했던 시도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문화와 문명의 발전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반복되어 왔다. 그리고 강력한 지식이나 물질문명 앞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의 종주국이라는 말은 어쩌면 적절치 않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개인이건 국가건 상호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어서 순수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선진국, 개발도상국, 후진국 등 국가 간 서열이 가려지며 그것이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국가 이미지에 크게 영향을 미쳐온 것도 사실이다. 인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원인과 결과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시각적인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든 영감을 받은 것이든 제1의 원인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한된 교류가 이루어졌던 과거에도 서로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는데 요즘 같이 미디어가 발달된 시대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화나 문명은 마치 물처럼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수용하지 않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저수지처럼 흐르는 물을 잠시 가두어 둘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원히 흐르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지역을 바라보고 어떻게 풍토를 이해하며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갈 것인지 매우 중요해진다. 모든 문화와 문명은 인간의 오감각을 통해 체화되고 그것을 통해 체감하게 된다. 그 가운데 시각적인 것은 가장 선명하고 가장 지대하게 반영되며 정체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게 풍토(風土)를 기반으로 해서 내외부적인 영향을 거쳐 형상화된 총체를 가리켜 흔히 풍경(風景)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자연이 지배적일 때는 풍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바람(風)에 의한 풍화현상, 빛(景)에 의한 변색 혹은 퇴색이 주요 요인이었다. 풍경이 바뀌려면 식물이 자라고 풍화되고 변색되어야 한다. 그만큼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도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루 아침에 풍경이 바뀌어 있다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듣는다. 그만큼 우리가 가진 자연과 전통을 신중하게 대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이런 도시에서 과연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 무슨 창의적인 문화예술이 탄생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사회는 어쩌면 또 다른 의미의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등산 자락에 들어서 있는 별서정원(누정)을 보라. 거기에서 수많은 시인묵객들에 의해 찬란한 가사문학이 탄생했다. 풍경이 그들을 사색의 세계로 인도하고 노래하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등산을 보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가?, 아니면 초고층 건축물 위에서 문명의 혜택을 고마워하며 조망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는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도시개발이 실제 지역 풍경을 훼손하고 있고, 그것은 결국 우리 삶의 바탕인 풍경을 죽이는 일(殺風景)을 방관하는 일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지역학은 지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 그것을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가고 조화를 이루려는 학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도시마다 마을마다 역사와 자연의 노래가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제대로 된 지역학이 필요한 때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