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1년 '5·18 역사왜곡처벌법'…재검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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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1년 '5·18 역사왜곡처벌법'…재검토 필요
올해 시행됐지만 처벌 사례 전무||예외조항 많아 실효성 의문 제기||오월 관련 허위사실 유포 아니라||'차별과 혐오금지' 취지 반영돼야
  • 입력 : 2021. 12.01(수) 17:27
  • 김혜인 수습기자
80년 5·18 당시 계엄군에 맞서는 광주 시민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 제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역사왜곡 단죄법' 발언에 올해 1월 5일부터 시행 중인 '5·18 역사왜곡처벌법(5·18 특별법)'의 실효성과 취지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일 5·18 기념재단 및 오월 단체 등에 따르면 '5·18 역사왜곡처벌법'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악의적으로 퍼뜨릴 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는 5·18 특별법 개정안이다.

이 법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의 경우 피해자가 특정돼야 죄가 성립되는데 그동안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날조가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처벌할 수 없었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지난 1월5일부터 도입돼 1년이 다됐지만 현재까지 이 법으로 처벌받은 사례는 단 한건도 없다. 이 법의 적용을 받을만한 사례가 대부분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예외조항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3월 위덕대학교의 박훈탁 교수가 수업 중 '5·18 북한군 주동설'을 주장해 논란이 됐다. 박 교수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수업 도중 "5·18이 민주화운동이 아니고 북한군이 저지른 범죄행위란 주장은 상당한 과학적 근거와 역사적 증언과 증인을 갖고 있다"고 발언했다.

박 교수의 망언은 5·18기념재단을 비롯한 오월단체의 분노를 샀지만 처벌 받지 않았다. 예외조항(5·18 특별법 제8조 2항) 때문이었다.

5·18 특별법 제8조 2항은 허위사실 유포행위가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과정에 관한 보도를 위한 것이거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목적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결국 오월단체들은 박 교수를 상대로 형사소송이 아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5·18 역사왜곡처벌법의 예외조항은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와 배치된다는 논란 때문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예외조항이 생각보다 강력해 되레 왜곡처벌법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18기념재단 차종수 팀장은 이런 예외규정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차 팀장은 "박 교수의 사례처럼 예외조항 때문에 엄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서는 안된다"며 "변호사와 충분한 논의 끝에 5·18 특별법 제8조 2항이 면죄부가 되지 않도록 의견을 개진해 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광주의 한 변호사는 "예외조항으로 불리는 '5·18 특별법 제8조 2항'은 역사왜곡에 대한 형사처벌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한 장치로, 이 조항이 없어지면 역사왜곡처벌법 자체가 위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학계는 "애초에 법 제정 때부터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역사왜곡을 사법적으로 단죄하겠다는 접근보다는 5·18 역사를 부정하게 다루는 행위가 심각한 차별과 혐오라는 공감대가 도입 취지에 반영됐어야 했다는 것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왜곡처벌법의 취지가 '왜 허위사실을 퍼뜨리냐'는 차원의 문제로 그쳐서는 안된다.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는 맥락에서 역사부정을 엄단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며 "유럽국가의 홀로코스트 부정죄 처벌도 '진실을 가리자'는 취지보다는 인종차별적 관점에서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가 '혐오'라고 판단돼 입법된 것이다. 앞으로 법을 운영하는 데 있어 이러한 시각이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사 사례도 있다. 지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5·18민주화운동이나 제주 4.3사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처럼 이미 확립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비하하는 말도 혐오 표현에 해당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인권위는 가이드라인 '혐오표현 리포트'를 통해 역사적 사실의 부정을 단순한 허위사실로 볼 것이 아니라 혐오가 표출되는 형태가 역사를 부정하는 식으로 나온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성훈 광주인권사무소 팀장은 "차별 금지 조항중 지역에 의한 요소가 있다. 5·18민주화운동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행위가 곧 광주 지역을 차별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5·18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는 지역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혜인 수습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