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소아암 환자 위한 머리카락 기부 '따뜻한 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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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소아암 환자 위한 머리카락 기부 '따뜻한 공생'
어머나! 달비||어린 암환자를 위한 머리카락||나눔의 준말 '어머나' 운동본부||머리카락 기부 운동을 해석하면||해안가 어부들의 신앙의 대상||달비 같은 성격이라고나 할까
  • 입력 : 2021. 12.02(목) 15:17
  • 편집에디터

해남윤씨종가 미인도 가체

외손자의 태내머리카락으로 만든 태모필(문상호)

배냇머리붓(胎毛筆)에서 모유필(母乳筆)까지

"연하디연한 세필,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자란 머리털로 붓을 만들었습니다. 짜박짜박 걸음걸이 할 때부터 그 내력을 그렸습니다. 길고 긴 곰할머니의 동굴, 마늘냄새 쑥냄새 진동하는 흑암의 자궁으로부터 빛과 어둠이 나뉘고 궁창이 나뉘고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와 별들과 새들과 육축들과 남자 사람 여자 사람이 태어나서 소멸하기를 거듭한 그림 말입니다. 하지만 내 칠하는 문양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을 한지 삼고 쌀뜨물 먹물 삼아 칠하기 때문일까요. 무수히 많은 글자가 셀 수도 없는 이야기가 구름처럼 보프라지다가 엉기다가 하기 때문일까요. 태모필(胎毛筆) 일필휘지 그은 선들은 흩어져 구름이 되고 칠한 색들은 시나브로 무색이 되었습니다. 빛 가운데로 나를 밀어내시던 산고(産苦)의 내력이 하릴없이 구름 되고 바람 되어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어머니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 내력이 비 되고 눈 되어 뭍 그윽이 스며든 것을.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봄으로 싹을 틔우고 여름으로 잎을 내며 가을로 열매를 맺는 것을. 나는 그저 색칠할 뿐입니다. 어머니 자궁 속에서 돋아난 머리칼로 쌀을 빚고 들을 빚고 오, 저 간단없는 광명의 빛을 빚습니다."

졸시 '배냇머리붓' 전문이다. 배냇머리는 배내옷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기가 태어날 때 어머니 뱃속에서 자란 머리털을 말한다. 이 머리카락으로 만든 붓이니 배냇머리붓 혹은 태모필(胎毛筆)이라 한다. 광주시 지정 인간문화재 문상호 필장은 외손자의 배냇머리붓을 직접 만들어 소장하고 계신다. 지난해 가을 본 지면을 통해 바람과 햇볕의 환유, 칼보다 강한 붓이라는 카피로 붓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태모필을 탄생필이라고도 한다. 이 붓으로 공부하면 크게 성공한다는 속설이 있다. 일반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기에, 이를 만들거나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것만 있겠는가. 모유필(母乳筆)이 있다. 태모필과는 반대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머리카락으로 만든 붓이다. 이 또한 문상호 필장이 소장하고 계신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어머니의 젖으로 만든 붓이다. 어머니 생전 빗질하며 한올 한올 떨어진 머리카락을 수십년 모아 만든 붓이니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태모필이나 모유필은 본래 갖고 태어난 머리카락에 흠결이 없는 상태 예컨대 낭자머리 같은 본래의 머리카락이어야 가능하다. 그러지 않으면 머리카락 끝이 갈라져 붓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물론 태모필, 모유필 모두 관상용 혹은 기념용이기 때문에 실제 사용하려면 다른 털과 섞어서 제작해야만 한다.

달비와 가체(加髢)

붓보다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따서 활용하는 것은 댕기머리가 으뜸이요 댕기머리를 잘라 가지런히 묶어둔 것은 달비가 으뜸이다. 이 또한 2년여 전 본 지면을 통해 '달비에 대한 묵상'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을 일부 가져와 다시 소개해둔다. 달비를 여러 겹으로 장식한 머리를 가체(加髢)라 한다. 가짜머리카락이라는 뜻이다. 숱이 적은 머리에 덧대는 가발이 체(髢)다. 부르는 이름이 여러 가지다. 수체(首髢), 체발(髢髮), 월자(月子), 다리, 다래, 달비 등이다. 표준어는 '다리(髢)'다. 달비는 댕기라는 뜻도 가지고 있으면서 장식한 후의 가체라는 뜻도 포함한다. 중의적이다. '여자들의 머리숱이 많아 보이라고 덧넣은 딴머리'라는 뜻이다. 남도지역 해안이나 섬지역에서는 이 달비를 신앙물로 삼기도 했다. 당나무 등 고목에 걸어두고 지나는 선박들이 신산고사(가장 먼저 잡은 조기를 바쳐 지내는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처녀, 생식, 생산으로 이어지는 다산과 풍어의 고대로부터의 관념이라 할 수 있다. 월자와 가체는 같은 말이다. 조선시대 그려진 대부분의 풍속화들 속에서 월자 모양을 확인해볼 수 있다. 대표적인 가체는 대수머리, 어여머리, 떠구지머리, 첩지머리, 얹은머리 등이다. 대수(大首)머리는 조선시대 왕비가 대례복을 입을 때 하던 머리다. 어여머리는 조선시대 궁중이나 양반집의 아녀자들이 예장할 때 머리에 얹는 큰머리다. 순정효황후 어여머리 사진이 잘 알려져 있다. 솜 족두리를 쓰고 그 위에 큰 머리를 얹은 다음 옥판과 화잠으로 장식하고 그 위에 다시 활머리를 얹었다. 신윤복의 그림에 나오는 여러 기녀들의 머리들이 모두 가체의 표본이다. 김홍도의 그림이나 유운홍의 기녀도 등에 나오는 가체도 매우 흥미롭다. 월자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가지런히 모아놓은 달비는 매우 큰 값에 매매되거나 공출되기도 하였다. 궁중머리로 알려진 큰머리와 어여머리의 월자를 갖추어 민가에서 혼례를 치룬 유행기도 있었다. 그렇다면 왕궁으로 혹은 양반가로 공출당한 달비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누군가는 낮은 가격에 자신의 머리칼을 팔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강제로 빼앗겼을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이런저런 가발을 만드는 것도 있지만 기부받은 댕기로 가발을 만드는 운동이 있다. '어머나' 운동본부다. '어머나'는 어린 암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의 준말이다. 이 머리카락 기부운동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해안가 어부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달비 같은 성격이라고나 할까. 배냇머리붓에서 모유필까지 이른바 머리카락 댕기의 의미를 넘어, 자신의 댕기머리를 잘라 달비를 만들고 그것으로 소암환자들에게 기꺼이 나누는 이 마음 말이다. 그래서다. 댕기머리의 길고 긴 역사의 행간에 오늘날 행하는 머리카락 기부운동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이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대동 세상의 한 디딤돌이지 않겠는가.

목포항도여중 머리카락 기증 학생과 교사들. 이윤선

남도인문학팁

어머나! 댕기머리 자른 단발머리 천사들

지난달 16일 목포항도여중(교장 김재점) 다섯 명의 학생과 교사 두 명이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수년간 길러온 머리카락을 잘랐다. 2019년에 이은 기부활동이다. 언니의 선행을 따라 동생 김지우(7세)도 참여하였으니 실제로는 여덟 명이다. 댕기머리 자른 단발머리 천사들이라고나 할까. 그래서다. 3학년 김주아, 선나영, 선세리, 2학년 최은민, 1학년 김경린 학생들의 이름을 남겨두고 싶다. 이 선행을 주도한 방주현 교사는 이번 기부가 다섯 번째다. 백미송 교사도 뜻을 같이 했다. 누군가 시작하니 해마다 자발적인 참여자가 늘어난다고 한다. 선행에 대한 이야기는 줄어들고 포악한 소문들이 득세하는 듯한 교육계에 이같은 따뜻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자 행운 아니겠는가. 소아암환자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공동체 의식 함양에도 기여한다는 김재점 교장의 격려가 가리키는 것들이 있다. 머리카락은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심하게 빠지는 어린 나이의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증된다. 항균 처리된 가발은 가격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우들에게 특별한 선물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보다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심한 우울증에 빠지는 소아암환자들에게 정신적인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기부활동이 심리적인 연대감 나아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마음을 함양해주기 때문이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서 다루던 일을 2019년부터 어머나운동본부에서 이어가고 있다. 미담을 넘어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한 공생으로 나아가는 운동임이 틀림없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