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유순남> 거저 얻은 것들이 행복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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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유순남> 거저 얻은 것들이 행복을 준다
유순남 수필가
  • 입력 : 2021. 12.07(화) 16:23
  • 편집에디터
유순남 수필가
오른손목이 아팠다. 삼년 전 친구들의 성화로 골프를 배우다 왼 손목을 삐끗했다. x-레이를 찍어보니 뼈에는 별 이상이 없어서 그 후부터는 오른손을 주로 썼다. 그런데 얼마 전 오른 손목이 아파서 살펴보니 엄지손톱만큼 부어있었다. 염증인가 해서 봉침을 놓았는데, 통증은 차도가 있었으나 부기는 그대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쪽 검지에 통증이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 두 손가락이 조금씩 부어있었다. 이제 나이가 적지 않아 '관절염이 시작되었나보다!'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허허로웠다.

밥맛이 뚝 떨어졌다. 인테넷에서 관절염 증상을 검색했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에서 나타날 때는 좌우 대칭적이다. 미열과 무력증이 느껴져 식욕부진이 올 수 있다. 붓는 느낌이 있다. 장시간 움직이지 않을 때는 관절의 경직이 느껴진다. 염증성 열감이 나타난다.' 설마 했는데 증세가 백퍼센트 관절염이다. 관절염에 좋은 음식을 검색했다. 체리, 마늘, 유제품, 고등어, 브로콜리, 견과류, 녹차, 감귤류, 통 곡물, 콩 등이다. 이중 반 정도만 먹는다. 음식에서도 부족함이 있었다.

벌써 관절염이라니! 온 신경이 아픈 곳으로 쏠렸다. 행복이 아픈 곳에 달려있는 것만 같았다. 모든 계획과 희망이 허망한 것이 된 느낌이다. 앞으로는 등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승용차를 따로 갖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많이 걸었다. 그 무렵 건강검진 결과는 골밀도가 나이에 비해 훨씬 좋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승용차가 원망스러웠다. 환경 문제도 있고 해서 없애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장거리를 오가는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며칠 후 오른쪽 위 금니에서 금속부분이 빠졌다. '뼈가 무너지니 이까지 나빠지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총체적 난국이다. 병가를 내고 아침 일찍 치과병원에 갔다. 다행히 금니는 그대로 붙이면 되고 다른 이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다음으로 관절 전문병원에 갔다. x-레이를 찍고 초음파 검사를 했다. 병원이 붐벼서 결과를 알기까지는 네 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그 초조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의 전화번호를 지우던 날의 텅 빈 마음이 되었다.

의사 앞에 앉았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만으로는 결과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시선을 오로지 그의 입에 집중했다. 그렇게 힘들게 기다린 것에 비해 결과는 다소 황당했다. 손목과 손가락 모두 뼈는 이상이 없었다. 손목의 부은 부분은 물혹이라 수술하지 않아도 되며, 무거운 것을 들지 않으면 될 것 같다고 한다. 두 검지는 너무 많이 써서 그러니 다른 손가락을 사용하라는 처방이다. 생각해보니 창피하게도 그동안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신문을 보고 정보를 검색하거나 글을 칠 때 양쪽 검지를 사용하는 일명 '독수리타법'을 썼다. 그렇게 이십년을 지속했으니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편안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선다. 집 옆에 있는 산은 낮고 작아서 산책을 하고 싶으면 낮은 길로 걸으면 되고, 등산의 맛을 느끼려면 정상을 오르는 세 가지 길을 오르내리면 된다. 마지막에 물구나무서는 운동기구에서 5분정도 머리를 아래로 하고 하늘을 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파란하늘에 세상 시름이 다 녹는다. 집에 와 다시 그 산을 바라본다. 그곳의 나무와 풀과 새소리를 생각하며 편안함에 젖어 혼란스러웠던 오늘의 감정 변화를 잠재운다.

새삼 느낀다. 행복은 힘들게 얻은 물질이나 명예, 권력이나 지식이 아니라 거저 얻은 자기신체의 장기 또는 손발이나 이목구비 하나하나의 건강에 달렸다는 것을. 또 산과 바다 그리고 변화무쌍한 하늘과 구름, 사랑스런 햇살이나 은은한 달빛과 신비스런 별들, 때로는 마음을 적셔주는 비와 포근한 눈, 혹은 안개와 노니는 바람이나 동심을 가져다주는 무지개를 만났을 때라는 것을. 거기에 사랑하는 가족이나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부러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