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유순남> 산은 스스로 이름을 짓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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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유순남> 산은 스스로 이름을 짓지 않고
유순남 수필가
  • 입력 : 2022. 01.24(월) 13:13
  • 편집에디터
유순남 수필가
여중친구 네 명이 자기가 나고 자란 집과 고향을 소개하기로 했다. 다음은 필자차례다. 잠시 눈을 감고 고향 화순의 절경들을 톺아보았다. 먼저 화순팔경을 떠올렸다. 화순적벽(창랑적벽, 물염적벽, 보산적벽, 노루목적벽), 도암 운주사, 백아산 하늘다리, 고인돌 유적지, 이서 규봉암, 동복 연둔리 숲정이, 만연산 철쭉공원, 화순읍 세량지. 특히 연둔리 숲정이는 건너편에서 보면 아름드리나무들이 동복천에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있는 풍경이 마치 무릉도원 같다. 그래서 김삿갓이 맞은편 구암리를 종명지로 선택했는지 모른다. 팔경 외에도 이서 물염정, 동면 환산정, 이양 쌍봉사가 있다.

'세파에 물들지 말라'는 물염정(勿染亭)은 조선 중종과 명종 때 관직을 얻었던 물염 송정순이 낙향하여 건립했다고 한다. 정자 안에는 물염정과 물염적벽을 노래한 당대 명사들의 시액(詩額)이 여러 개 걸려있다. 물염의 시 한 대목이다. '아침 골짜기 구름 걷히니 산봉우리 높아라/ 아이들은 낙엽 모아 붉은 밤을 굽고/ 아내는 국화 따다 술에 띄우네/ 일찍이 숲 속이 이다지 즐거운 줄 알았다면/ 어찌하여 고된 벼슬살이 매달렸으랴.' 가을에는 오색 단풍이 정자주변을 돌고 흐르는 물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적벽 또한 일품이다. 김삿갓이 자주 들러 시를 읊은 장소로도 유명하다. 환산정(環山亭)은 이름처럼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있다. 이괄 변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에 의병을 일으켰던 백천(百泉) 류함선생이 1637년 창건했다고 한다. 백천은 병자호란 때 화순에서 의병을 이끌고 청주까지 올라갔으나 화친 소식을 듣자 통곡하며 돌아와 환산정을 짓고 속세와 단절했다고 한다. 서성제 안에 있는 정자로 가는 길 양쪽에는 나무가 우거져 마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오백년 가까이 된 수려한 소나무 앞 벤치에 앉아 서성제의 잔잔한 물결을 보고 있노라면 우국지한을 삭이던 백천의 마음이 느껴진다. '마당엔 외로운 소나무/ 섬돌엔 국화/ 진나라 율리 사는/ 도연명에게 배웠네/ 세상이 시끄러워/ 처음 계획 어긋나니/ 산수 그윽한 곳에/ 만년의 정 의탁했네(중략)'

이양 쌍봉사(雙峰寺)는 신라 경문왕 때 쌍봉 철감선사가 중국에서 귀국하여 산수의 수려함을 보고 창건했다고 한다. 쌍봉은 법력과 덕망이 널리 퍼져 왕이 스승으로 삼았다고 한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57호인 철감선사탑과 보물 제170호인 철감선사탑비가 있고, 대웅전인 삼층 목탑은 보물 제163호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1628년에 중건했고, 그 후로도 두 차례 중창했다고 한다. 철감선사탑은 우리나라 석조 부도 중 가장 기묘하고 아름다운 우수작품이며, 철감선사탑비는 신라 말 작품으로 비신은 없어졌지만 귀부(龜趺)와 이수(螭首)의 우아함은 당대의 명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국각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고, 며칠 묶고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산부자명 인인이명(山不自名 因人而名)'이라는 말이 있다. 산은 스스로 이름을 짓지 않고 사람으로 인해서 이름이 생긴다는 말이다. 즉 산 이름이나 땅 이름은 스스로 유명한 것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으로 인해서 유명해진다는 말이다. 금강산은 김삿갓이 스무 번 넘게 오르내리며 시를 남겨 유명해졌고, 개성의 작은 도랑 위의 다리도 고려 충신 정몽주가 그 위에서 이방원 일당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써 '선죽교'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경남 김해의 조그만 '봉화마을'은 노무현이라는 인물로 인해서 유명해졌다. 광주도 5∙18 희생자들과 광주시민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화순팔경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졌는지 궁금하다. 군청이 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선정했겠지만 경치의 아름다움은 물론 역사성이나 문화성도 살펴서 결정했는지 의문이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최근에 조성된 백아산 하늘다리와 만연산 철쭉공원은 흔하게 볼 수 있어서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대단한 사람과의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화순군에 제언한다. 그 두 곳 대신 물염정, 환벽당, 쌍봉사를 포함해서 '화순구경'으로 하든지, 그것이 어렵다면 이 세 곳을 더해서 '화순십일경'으로 하면 어떨지.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