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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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비선 실세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 입력 : 2022. 01.23(일) 15:07
  • 서울=김선욱 기자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고려말 공민왕 때의 신돈은 권력의 최고 실세였다. 승려 신분임에도, 공민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국정에 깊이 관여했다. 권문 세족을 약화시키고 신진사대부를 강화시켰다. 때로는 절차를 따르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공민왕과도 허물없이 지냈다. 신돈은 왕권 강화책인 사심관제를 부활시키고, 사심관이 되려는 야망을 키우면서 공민왕과 사이가 멀어졌다. 결국 반역자로 몰려 참형을 당했다.

장녹수는 조선시대 연산군의 후궁이었다. 종3품의 숙용에까지 올랐고, 연산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권력을 휘둘렀다. 왕을 꼬여 각종 인사에 관여했다. 장녹수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자, 모두가 출세하기 위해 그녀 앞에 줄을 섰다. 백성들의 원망은 높아졌고, 연산군은 몰락했다. 중종반정을 성공시킨 세력은 장녹수를 참형에 처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죽을 고비에 처했던 명성왕후에게는 한 무녀가 있었다. 무녀는 명성왕후의 환궁 날짜를 정확히 맞추면서 신뢰를 쌓았다. 명성황후는 무녀를 '진령군'으로 책봉했다. '군'은 왕자급에 해당하는 고위급 직위다. 진령군은 정치에 개입했고, 국정 농단을 일삼았다. 대형 굿판을 여러차례 벌여 국고를 탕진했다.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얼마 뒤 따라 죽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간신의 대명사는 '십상시'이다. 십상시는 중국 한나라 영제 때 환관 10인을 가리킨다. 환관이라는 직책이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권력을 행사해 '비선 실세'로 통한다. 환관 10명은 영제를 주색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들은 넓은 봉토를 소유하고 국정을 장악해 실질적인 권력을 휘둘렀다. 모든 관직을 돈을 받고 팔았다. 결국 조조와 원술에게 몰살됐다. 이처럼 역사 속 비선 실세들은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국정을 파탄으로 몰고갔고, 그들 또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우리에게는 아픈 역사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다. 탄핵의 주된 원인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었다. 최순실의 오방색 타령, 박 전 대통령의 "온 우주의 기운"과 같은 발언에 국민들은 식겁했다. 최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캠프와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 녹음에서 불거진 '무속인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손바닥 '王'자에 이어, 선대본부 무속인 개입 의혹, "도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김씨 발언까지. 공적 영역에 무속이 깊숙이 스며든 듯한 느낌이다. '무속의힘'으로 가려고 하는 것일까.

서울=김선욱 기자 seonwook.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