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사자산 기슭, 토굴에 담긴 조각가의 사유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장흥 사자산 기슭, 토굴에 담긴 조각가의 사유
강대철 조각토굴
  • 입력 : 2022. 05.05(목) 14:56
  • 이용환 기자

한국 조각계의 떠오르는 아이콘이었던 조각가 강대철이 장흥 사자산 산기슭에서 토굴을 파고 있다. 강 조각가는 여기에 7개의 토굴을 지어 불교와 기독교를 아우르는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한 조각 토굴을 완성했다. 저자 제공

강대철 조각토굴. 살림 제공

강대철 조각토굴

강대철 | 살림 | 2만5000원

한국 조각계의 떠오르는 아이콘이었던 조각가 강대철이 2005년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조각가로서의 삶과 그동안 이뤘던 세속에서의 업적을 접고 구도의 길을 떠나겠다'근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가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6년여의 세월을 들여 조각한 100m가 넘는 토굴과 함께였다.

홀연히 종적을 감췄던 그는 장흥 사자산 기슭에 내려와 6년 동안 한국 최초의 조각토굴을 완성했다. 토굴을 마주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경악, 바로 그 자체."라고 말했다.

신간 '강대철 조각토굴'은 현실에서 잠시 떠나있던 조각가 강대철의 숨겨진 시간이 담겨있다. 한때 잘나가던 조각가였지만 바람같은 인연을 따라 장흥 사자산 기슭으로 내려온 그는 토굴을 파며 느낀 글과 사유를 책에 담아냈다.

강대철은 홍익대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1978년 국전 문공부 장관상과 제1회 중앙미술 대상을 수상한 조각가다. 하지만 그는 삶의 궁극적인 질문에서 헤어날 수 없었던 운명적인 작가였다. 마음 속에서도 늘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이 들끓었다. 이후 그는 2005년 조각가로서의 삶을 접고 새로운 길을 나섰다.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보겠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렇게 구도의 길에 오른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강 조각가는 수행 토굴을 파게 된다. 조각 토굴의 시작이었다. 토굴을 파들어 가면서, 강 조각가는 점토층으로 이뤄진 산의 속살을 만나고, 그 순간 그에게 숨겨진 조각가의 본능이 되살아났다.

날이 밝기만 하면 강 조각가는 토굴로 달려가, 식사 시간 외엔 온통 작업에만 몰두했다. 해가 지고 굴 입구가 어둑해질 때까지 작업을 했기 때문에, 하루 작업 시간은 10여 시간씩 됐다.

강 조각가가 만든 토굴은 현재까지 총 7개의 굴로 이뤄져있다. 토굴의 주요 소재는 예수와 부처다. 하지만 강 조각가는 "특정 종교의 성상(아이콘 작업)을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불교를 방편으로 '대자유인으로서의 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탐색의 도정이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그의 사유는 토굴의 입구 중앙 홀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부조로 된 오른손을 펼쳐 보이는 수인(手印) 상반신 예수상이다. 예수 상은 석관 안에 누워 있는 미륵불을 내려다보고 있다. 예수를 미륵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예수나 부처가 아니고, 예수 부처인 셈이다. 기독교와 불교를 하나로 본 강 조각가의 여유로운 시선이 신선하다.

출판사는 "돈황이나 막고굴, 토함산 석굴암처럼 인간이 굴을 파는 행위는 뭔가 어쩔 수 없는 '간절함' 때문"이라며 "굴을 파는 행위는 그 자체가 기도"라고 했다.

강대철의 토굴 또한 간절한 그 무엇에 대한 그만의 갈구다. 조각가 개인의 작품을 넘어 우리 모두의 굴이기도 하다. 8일은 불기 2566년 부처님 오신날이다. 부처는 인류의 상생과 공존을 위해 이땅에 왔고 육신의 무상함과 집착의 허무함을 가르쳤다.

장흥 사자산 자락 '강대철의 조각토굴'도 마찬가지다. 그 토굴은 강대철이 만들었지만 어쩌면 우리의 모두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간절함의 상징이다. 조각가 개인의 작품을 넘어 우리 모두의 굴이기도 하다. '경악'스럽지만 모두에게 위로와 자부심도 전해준다.

6년 동안 토굴을 파며 아로새긴 놀라운 사유와 경이로운 조각들…. 책으로 봐도 좋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