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병흠> 그들의 기록, 그리고 기억해야 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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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병흠> 그들의 기록, 그리고 기억해야 할 우리
정병흠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연구실장
  • 입력 : 2022. 05.19(목) 13:04
  • 편집에디터
정병흠 연구실장
격동의 1980년대, 처절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수많은 시민들의 몸부림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기록되기를 희망했을까?

5·18민주화운동 42주년 및 6월 항쟁 3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서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사진·영상·취재기록 등을 보여주는 「그들이 남긴 메시지; 억압 속에 눌린 셔터」 기획전시가 펼쳐지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폭력에 항거했던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각종 기록물은 사진 속 그날의 상황을 공감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대검과 총탄 앞에서도 당당하게 맞섰고, 곤봉과 최루탄 속에서도 민주화를 쟁취하고자 했던 함성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현장을 기록한 이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틈도 없이 핏빛 연기 가득한 그곳에서 '민주·정의·진실'에 대한 갈망을 놓치지 않았다. 사진기록을 남긴 카메라 렌즈 속 그들은 총칼에 억눌리고 있었고, 최루탄이 빗발치는 순간에도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다.

1980년 5월은 민주화의 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했던 전남대학교에서는 5월 3일 반민족·반민주 장례가 있었고, 5월 8일 정문 앞에서는 시내로 진출하기 위한 학생들과 경찰이 대치하는 등 민주화를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전남도청 분수대에서 열린 민족민주화성회에서는 박관현 총학생회장을 비롯해 교수·학생·시민의 계엄령 해제와 민주화를 열망하는 마음이 하나 되었다. 18일부터 시작된 10일 간의 항쟁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계엄군의 폭력에 맞서 저항했지만 결국 억울한 희생만을 남긴 채 끝나고 말았다.

1980년 이후 전국 각지에서는 5‧18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시민·종교계·학계의 투쟁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1982년 광주와 부산에서는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있었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5·18 진실규명을 위해 사회운동을 지속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조작·은폐가 도화선이 되어 '4·13호헌조치' 등 반민주적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확산되었다.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맞고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결국 7월 5일 그가 운명을 달리하게 되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더 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공식 주도한 국민대회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주요 도시에서 약 24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1980년 국가폭력을 겪은 광주시민들은 정부의 만행에 더욱 분노하였고, 1980년 5월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금남로로 집결해 반민주정부를 규탄하는 평화적 시위를 벌였다.

1987년 6월항쟁은 1980년 5·18의 연장선이었으며, 결국 정권은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조치 시행을 약속하는 '6·29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다. 5·18의 원흉인 전두환 정권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또 한 명의 원흉이었던 노태우가 정권을 잡으며 끝나지 않은 5·18의 불씨를 더 키우게 되었고, 1989년 조선대학교 학생 이철규 변사사건으로 인해 광주는 다시 분노했다. 그리고 5·18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은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1980년대 수많은 국민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얻은 민주주의를 지켜가야 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이며, 바쁜 일상 잠시 멈추고 잠깐 동안만이라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되신 분들을 기억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1980년부터 1990년까지의 항쟁 현장을 필름·수첩·녹음기에 담았던 기자, 학생, 시민들이 남긴 기록물의 소중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그토록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를 말이다. 그 순간 그들의 직업의식이, 취미가, 학우애가 역사적 사명감으로 승화할 수 있었던 까닭은 어쩌면 오늘의 우리에게 메시지를 남기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제42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 슬로건은 '오월, 진실의 힘으로! 시대의 빛으로!' 이다. 진실의 힘은 곳곳에서 남겨졌던 기록과 당사자들의 증언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실들이 더 이상 왜곡·폄훼되지 않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로 바로 설 수 있는 진실의 힘이 시대의 빛이 되어야 한다. 그날, 역사를 써나간 그들이 남긴 기록의 가치가 퇴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가폭력 앞에서 소중한 목숨까지도 내놓으며 자유·민주·인권을 지키고자 했던 그들, 그리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또 다른 그들. 그들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제42주년 기념식은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국회의원과 장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이들은 손을 잡고 앞뒤로 흔들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고,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오월정신을 확고히 지키고, 오월이 품은 정의와 진실의 힘이 시대를 넘어 영원히 빛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라며 '자유', '정의' 등을 언급했다. 부디 새 정부가 임기를 마치는 순간까지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국가폭력과 인권유린, 1980년대 전국적으로 뜨거웠던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희생을 꼭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