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박관서> 다시 5·18, 문학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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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향기·박관서> 다시 5·18, 문학의 힘으로
박관서 시인
  • 입력 : 2022. 05.17(화) 18:10
  • 편집에디터
'사람은 업신여기는 동안에는 증오하지 않는다. 타인이 나와 동등하거나 더 우월하다고 여겨질 때만 증오한다.'

다시 5·18을 맞는다. 올해는 5·18의 원흉인 독재자가 세상을 뜨고 나서 맞는 첫해이어서인지 여러 가지 생각이 하 수상하게 스쳐 간다. 그래, 증오하던 적이 사라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처럼 명쾌한 응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의문에 대한 실체적 응답인 듯 최근 들어 5·18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학작품들이 우리 지역에서 거의 쏟아지고 있다.

올해 광주전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으로 최초 5·18문학상을 수상한 고영서 시집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천년의 시작· 2021)'을 필두로 조성국 시집 '귀 기울여 들어줘서 고맙다(문학들·2022)', 박몽구 시집 '5월, 눌린 기억을 펴다(시와문화·2022)', 강대선 시집 가슴에서 핏빛 꽃이(상상인·2022)', 필자의 졸시집 '광주의 푸가(삶창·2022)' 등이다.

물론 이외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소설집과 동화 및 청소년 소설 등 문학의 영역에서 5·18이 호출되고 있다. 역시 이처럼 독재자의 사후에 남도의 지역문학이 꿈틀거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난 신군부 독재의 폭압적인 5·18민중항쟁의 발발 후 한 달도 되지 못한 1980년 6월 2일에 김준태 시인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필두로 광주전남문학은 직접적인 문학적 대응에 나선다.

김남주 시인은 물론 '오월시동인'과 수많은 시인, 작가들이 나서서 온갖 탄압에도 짓눌리지 않고 5·18의 참상과 이에 맞선 민중들의 저항과 그 정신의 실체를 문학작품으로 끈질기게 형상화한다.

그러한 결과 아무래도 지식인문학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한국문학의 내용과 주체가 노동자, 농민을 중심으로 기층 민중이 문학의 중심으로 하방 되어 일어서게 되는 계기가 된다. 5·18을 매개로 촉발된 지역문학이 80년대와 90년대 한국문학을 휩쓴 민족민중문학의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다.

문학의 내용과 역사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의 문학에서 계층과 계급을 가리지 않고 문학의 주체이자 객체로서 참여한 열린 문학의 시대가 당시의 민중문학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한국문학에서도 '잔치가 끝나고' 또한 5·18 역시 국가에서 인정한 제도와 형식으로 안착함과 동시에 추모와 기억의 틀 안에 갇히면서 지역문학은 제대로 된 5·18문학으로부터 멀어졌다. 아니 사실 '집안 이야기이기도 하고 너무 뻔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하다. 끝내 진실을 부인하면서 한 생을 마친 독재자를 보내고 드는 하 수상한 생각과 문득 작가들이 5·18을 문학으로 호명하기 시작하는 이유가 선명해진다. 증오를 잊지 말고 또한 경멸의 영역으로 치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글의 서두에서 인용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악의 저편'에 나오는 경구는 곧바로 이어진다. '경멸이 아니라 증오의 대상인 적에게는 감사하라. 경멸은 저급한 감정의 소비로 사라지고 말지만, 증오는 적과의 싸움을 통해서 자기 삶의 의지와 철학 그리고 정신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5·18을 통해 얻은 증오의 대상이 단순히 몇몇 독재자 개인일 수 없다. 더구나 그의 육체적 생애의 시 말로서 휘발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어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그렇듯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붙는 독재와 파시즘의 현상과 흐름을 경고하는 신호이자 기제여야 한다.

그렇듯이 시경(詩經)에 '백 년의 고민을 삼켜서 한 마디로 내뱉는 것이 시' 여야 하는 문학의 영역에서도 이제 다시 5·18이 시작이어야 한다. 문학의 힘이 다시 발휘돼 지나간 백 년의 역사와 다가올 백 년의 미래 위에 5·18문학의 정신과 내용을 올곧게 새겨나가야 할 때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