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창·윤영백> 실력 광주? 사랑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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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창·윤영백> 실력 광주? 사랑이 이긴다!
윤영백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살림위원장
  • 입력 : 2022. 05.22(일) 14:27
  • 편집에디터
윤영백 위원장
괴물처럼 전교 1등만 하는 학생이 있었다. 처음으로 석차가 내려간 적이 있는데, 얼굴에 그늘이 가득해서 토닥일 겸 학생을 모아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사랑이 이긴다'(민병훈 감독). 시를 닮은 영화였다. 한 여고생이 자살했다. 학생의 엄마는 전문직이었다가 주부로 전업했다. 높은 기회비용은 아이의 성적으로 보상되어야 했다. 중학교 때 아이는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전교 1등만 간다는 특목고에도 합격했는데, 아이는 여기서도 전교 1등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늘 2등이다. 엄마는 쏘아붙인다. 뭐가 부족하냐. 물려받은 머리가 부족하냐. 돈이 부족하냐. 3등은 2등 하고 2등은 1등 하는 거야. 아이는 항변한다. 발버둥쳐서 이만큼이라고. 잘했다고 칭찬해주면 안 되냐고. 한 번이라도.

얄궂게도 아이가 자살한 날은 드디어 전교 1등 성적표를 받아 온 날이다. 아이는 커피를 마시는 엄마 앞에 종이 한 장을 툭 던져 놓고 건너편에 앉는다. '자, 이제 됐냐?'는 표정. 엄마 얼굴에 0.1초간 미소가 스치다가 이내 차가워진다. 엄마가 일어나더니 느닷없이 딸 뺨을 후려친다. 이어지는 꾸짖음. "할 수 있었네!" 아이의 표정은 당황, 충격, 절망, 분노, 경멸이 섞여 일그러진다. 그리곤 일어서더니 고층 아파트 베란다 문을 현관문처럼 열고 나가버린다. 엄마의 외마디 비명. '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 들었다. 존재 그 자체가 행복, 사랑의 이유가 되지 못하고, 무엇이 되기 위해 존재할 때 생기는 슬픔을 아리게 그리고 있다.

화제작이었던 드라마 SKY캐슬 역시 '존재'와 '목적'의 자리가 뒤바뀔 때 어떤 비극이 생기는지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이미 정해진 삶의 '목적'이 '존재'를 짓누르는 거대한 SKY캐슬이다. 엄마를 살해한 전교 1등을 다룬 시사 다큐도 비슷한 서사를 가진다. 대한민국에서는 기사가 영화가 되고, 드라마가 현실이 되는 비극이 무한 반복 중이다.

배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행복해지려고 배우는 것이다.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 터 잡지 않은 배움은 사실 배움이 아닐뿐더러 인간의 내면을 식민지로 삼아 끊임없이 생체에너지를 강탈해 갈 뿐이다. 교육이라고 쓰고 입시라 부르는 제국주의는 아무리 아름답게 수식해도 폭력일 뿐이다. 이런 폭력을 바닥에 두고 어떻게 배움이 쌓일 것인가.

바야흐로 교육감 선거가 코앞이다. 교육감 선거야말로 배움의 바닥을 단단하게 다져가는 시간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러기는커녕 바닥을 흔들고 제국주의에 콘크리트를 덧칠하는 행태가 가장 격렬한 시기라는 것은 참 역설적이다.

매번 광주 교육감 선거판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실력 광주'다. 이런 흐름으로 이야기판이 만들어진다.

1. 한국 교육과정 평가원이 지역별 수능 성적 공개.

2. 보수 중앙 언론이 지역별, 학교별로 SKY 합격자순 줄세우기.

3. 광주 학력 개판 되고 있다는 지역 언론의 호들갑

4. '실력 광주' 안에서 공격하고 방어하는 후보들.

올해 초 모 언론은 다음과 같이 보도한 바 있다. 보도라기보다 선동이다.

광주시 교육청 관계자는 "광주의 실력이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하락세를 걷고 있다"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등장한 또 다른 '지역 교육계 관계자'는 "두 교육감은 실력 저조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며 "올해 있을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 간 학력 대책에 대한 학부모들의 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현 교육감이 후보들의 '실력' 공격에 맞서왔던 방식은 공격의 전제를 깨기보다 공격의 전제는 인정하면서 방어하는 방식이다. 마치 외모지상주의는 싫지만, 이 정도면 아직 날씬하고 예쁘지 않냐는 식으로.

덕분에 우리 단체는 진보 교육감 시대에도 명문대 중심 입시 설명회, 강제 학습 폐해, 기숙사 인권 문제, 방과후 활동 선택권은 물론 비교적 최근까지 학벌 조장 입시컨설팅 문제도 들추어야 했다.

교육으로 길러지게 될 실력의 단위를 무지개처럼 다양한 개인이 아니라 도시로 본다는 것 자체가 후보의 교육 철학이 빈곤하다는 증거다. 이런 실력으로 교육자치의 첫 단추를 꿰는 한 광주에 배움이 쌓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실력 광주의 판타지 안에서 학생은 자기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 '존재'할 수 없을 테니까.

무엇이 배움으로 생기는 진짜 실력인지 이야기판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아마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힘, 손잡을 수 있는 힘,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갈 힘일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위에 쌓지 않은 교육은 실력이 아니라 폭력일 뿐임이 합의되어야 한다.

광주에 실력을 재건축하겠다는 개발 사기에 속지 말자.

실력 광주를 넘어설 평화와 인권의 도시 광주의 실력을 갈망한다. 사랑이 이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