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계엄군, 의도적 상체 조준 사격"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518
"5·18 당시 계엄군, 의도적 상체 조준 사격"
5·18기록관, 의료인 현장 집담회||초기엔 대부분 허벅지 아래쪽 총상||‘보상 축소’ 폭도·비폭도 분류작업
  • 입력 : 2022. 05.22(일) 18:06
  • 정성현 기자

20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하얀 가운의 오월시민군, 의료인 현장보고' 집담회가 열린 가운데 김성봉 교수(당시 광주기독병원 응급실장)가 증언하고 있다. 뉴시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개최한 구술증언집담회에서 계엄군이 의도적으로 시민들의 상체를 조준 사격 했을 것이라는 의료인 증언이 나왔다.

22일 민주화운동기록관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록관 다목적 강당에서 '하얀 가운의 오월 시민군, 의료인 현장보고' 집담회가 열렸다.

이날 구술 증언에 참여한 김성봉 당시 광주기독병원 응급실장은 1980년 5월21일 동구 금남로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집단 발포 과정에 '의도적인 상체 조준 사격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실장은 "석가탄신일이었던 당시 광주기독병원은 정상 운영하고 있었다"며 "점심이 지나고 약 1시께 총상을 입은 환자들이 병원으로 몰려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총상 환자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니 처음 도착한 환자들은 대부분 허벅지 아래쪽에 총상을 입은 채 병원에 실려왔다"며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복부와 가슴, 머리에 총상을 입은 환자들이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군인들이 처음에는 훈련을 받은 대로 하체를 조준 사격하다 점점 상체를 노려 쏜 정황이다"며 "마치 짐승을 사냥한 듯한 무자비한 모습이었다"고 밝혔다.

전두환 보안사가 사후 보상 규모 축소를 위해 숨진 광주시민들을 대상으로 폭도와 비폭도로 나누는 작업을 진행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문형배 당시 전남대병원 병리학과 전공의는 "(1980년) 6월10일 보안사에서 연락이 와 군인 짚차를 타고 저녁께 505 보안대에 도착했다"며 "당시 나는 이곳에서 숨진 165명의 광주 시민들에 대한 폭도와 비폭도 분류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보안사는 '폭도는 죄인이고 비폭도에겐 후한 보상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저와 다른 민간인 대표들은 보상을 많이 받게끔 하자는 취지로 '모두가 비폭도다'고 설명했다"며 "그러나 끝내 보안사는 60여 명을 '폭도'로 규정 지었다. 현재까지도 이에 대한 보안사의 사과는 없다"고 지적했다.

홍인화 5‧18기록관장은 "42년이 흘렀지만 항쟁의 현장만큼이나 긴박했던 의료 현장 의료진의 헌신을 그동안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다"며 "이번 집담회를 계기로 피의 의료 현장을 지킨 의사들의 체험을 구술증언으로 담고 기록하고 재조명하겠다"고 전했다.

20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하얀 가운의 오월시민군, 의료인 현장보고' 집담회가 열린 가운데 문형배 교수(당시 전남대병원 병리학과 검시담당)가 고뇌하고 있다. 뉴시스

정성현 기자 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