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에 막 오른 오월극의 고전 '금희의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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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만에 막 오른 오월극의 고전 '금희의 오월'
최후항쟁 희생 이정연 열사 모티브 ||시민군 홍보부장 박효선 열사 작품 ||‘해방 광주’ 표현 마당극 장면 일품|| “올해부터 계속 공연 이어졌으면”
  • 입력 : 2022. 05.22(일) 18:14
  • 도선인 기자

1988년 서울 미리내 소극장에서 금희의 오월이 초연되는 모습. 극단 토박이 제공

5·18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첫 연극 '금희의 오월'이 22년 만에 무대에 올려졌다. 오월극을 전문으로 하는 지역 극단 토박이는 지난 20일과 21일 5·18기념문화센터 민주홀에서 '금희의 오월'을 공연했다.

'금희의 오월'은 광주항쟁을 연극으로 형상화한 최초의 작품으로 '오월극의 고전'이라 불린다. 작품은 최후항쟁까지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산화한 이정연 열사와 그의 동생 이금희가 주인공이며 이정연 열사의 가족, 대인시장 상인들의 이야기가 극화된 작품이다. 특히 계엄군이 5월21일 광주를 봉쇄하고 외곽으로 퇴진한 이후부터 시민자치가 실현돼 '해방 광주'라 불리는데, 이 기간을 표현한 6~7장의 마당극 장면은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금희의 오월은 1987~1988년 창작돼 그해 4월 제1회 전국민족극한마당에서 초연된 후, 전국 각 지역과 미국 7개 도시, 캐나다에서 공연됐다. 이처럼 5·18을 연극의 형태로 전 세계에 알렸으며 삼엄했던 1980년 후반 5·18민주화운동의 전 과정을 사실적으로 담아내 '현장 보고 성격의 리얼리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80년 5월 박효선 열사을 비롯한 지역의 문화활동가들이 주축이 된 문화선전대가 기획하고 실행한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 펼쳐진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 이로 인해 박효선 열사는 자칭 항쟁지도부 홍보부장이 됐다. 오월의 영원한 홍보부장 '박효선'에게, 오월극은 천명이었다. 최후항쟁 지 옛 전남도청을 지키다 빠져나와 동료들의 죽음을 겪었던 박효선 열사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느꼈고 이 죄책감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뤘다.

1970~80년대 광주에서 문화운동을 이끌었던 황석영 작가와 박효선 열사. 박효선 전집 발췌

금희의 오월과 더불어 박효선 열사가 희곡을 쓰고 연출한 '모란꽃'과 '청실홍실'은 오월 삼부작이라 불린다. 모란꽃은 5·18 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고 전옥주 선생을 모티브로 삼은 심리극이다. 극 중에서 5·18민주화운동에 참여, 북한 간첩 '모란꽃'으로 몰린 이현옥은 심리치료 목적으로 연극 무대에 선다.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밝힌 오수성 교수의 도움을 받았으며 작품이 만들어진 1993년 생소했던 '오월 트라우마' 개념을 확립시켰다. 또 투쟁의 현장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치유되지 않은 후유증을 사이코 드라마 기법을 활용한 사회심리극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험성 짙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청실홍실'의 경우 들불7열사 중 한 명으로 항쟁지도부 기획부장으로 알려진 김영철 열사에 관한 이야기다. 김영철 열사는 옛 전남도청 최후항쟁에서 계엄군에 체포된 뒤 상무대로 연행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후 광주교도소에 투옥돼 1981년 출소했지만, 오월의 굴레는 쉽사리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반복된 고문과 거짓 자백을 두려워해 시도한 자살 기도로 김영철 열사는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고 여생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청실홍실은 그의 지독한 삶이 배경이 되고 있으며 부인 이순자 여사가 넋두리처럼 내뱉는 대사가 극의 90%를 차지하는 일인극 형태다.

이외에도 5·18이 벌어진 직후 2년 여간 계속된 본인의 도피생활이 배경이 된 '그들은 잠수함을 탔다'를 쓰고 연출했으며 광주 MBC 특별기획 다큐드라마로 만들어진 '시민군 윤상원'과 5·18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 열사의 35일간의 미국 출항기 '밀항탈출'의 극본을 완성했다. 소설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를 각색해 5·18 당시 대안 언론이었던 투사회보가 만들어진 과정을 연극의 한 장면으로 재연하기도 했다.

임해정 극단 토박이 대표는 "금희의 오월은 1980년 5월 광주와 10일간의 항쟁을 전면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강력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이번 공연 준비는 또 한 번 그 생명력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며 "출연하는 배역도 많고 공연 조건이 까다로워 공연을 못 했던 시간이 벌써 22년이나 됐다. 올해를 시작으로 오월극 고전이라는 명성에 누가 끼치지 않도록 공연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금희의 오월을 연출한 박정운 연출가는 "박효선 선생님이 떠난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금희의 오월을 작업하면서 어느새 지나 가버린 시간을 되돌려 다시 한번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에 서 있다"며 "금희의 오월은 광주 곳곳의 투쟁과 항쟁, 고통과 분노, 아픔과 상처, 학살과 죽음들, 그 속에 피어난 광주시민들의 희생과 나눔이 담긴 집합체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금희의 오월, 마지막 공연은 오는 27일 5·18기념문화센터 민주홀에서 치러진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예약문의는 (062-222-6280).

'오월극의 고전'이라 불리는 금희의 오월이 22년 만에 공연된 가운데 작품을 설명하는 팜플랫.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