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햇살같던 '정동년'… 갑작스런 비보에 큰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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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햇살같던 '정동년'… 갑작스런 비보에 큰 슬픔
신군부 날조로 사형 선고 받아||"평생을 민주화에 헌신한 사람"||"27일 부활제까지 괜찮았는데"
  • 입력 : 2022. 05.29(일) 17:49
  • 도선인 기자
제14대 5·18기념재단 신임 이사장 고 정동년 씨가 별세했다.
오월의 사형수,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향년 79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별세하기 직전까지도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관련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등 5·18 명예회복을 위해 힘쓴 그였던지라 비보를 들은 이들 대부분 황망한 슬픔에 빠졌다.

29일 광주지역 시민단체에 따르면, 이날 정 이사장은 오전 10시께 남구 진월동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했다. 빈소는 동구 학동 금호장례식장 301호에 마련됐다. 시민사회는 유족과 논의해 고인의 장례를 3일장인 5·18민주국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고인은 1943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 중앙초등학교, 살레시오고를 거쳐 전남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했다. 1964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에 선출됐으며 정부의 한일회담 진행에 반대하다(6·3 항쟁) 1965년 구속·제적됐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다가 37세의 나이로 1980년 전남대학교에 복학했으나 그해 5·17비상계엄 확대 조치로 예비 검속에 걸려 구속당했다.

이후 김대중 자택에 방명록을 남겼다는 이유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으며 끝내 김대중내란음모 조작사건의 희생양이 됐다.

당시 신군부는 정권 찬탈과 무력 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집권에 방해가 되는 인사에 대한 무력 수사를 진행, '광주 폭동 수괴'를 지정해 반정부 인사를 탄압했다. 대상은 정 이사장, 홍남순 변호사, 송기숙 교수 등이다.

신군부는 '학생운동가이자 전남대 복학생인 정동년이 야당 지도자 김대중의 조종을 받아 기획한 내란이다'며 정 이사장을 내란 수괴로 지목했다. 정 이사장은 신군부로부터 △몽둥이를 사용한 폭력 △물고문 △바늘로 손톱 밑 찌르기 △손목에 수갑 채워 천장에 매달기 등 갖가지 무자비한 고문을 당했다.

결국 신군부는 정 이사장으로부터 '김대중에게 자금을 받아 시위에 쓰도록 전달했다'는 거짓 자백을 끌어냈다. 고인은 당시 최후 진술에서 "국민의 소리에 눈을 감고 있는 재판부에게 아무런 할 말이 없다"고 항변했다.

정 이사장은 내란 수괴 혐의까지 모자라 '광주사태 주동자'로 지목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5·18 관련자 중 가장 오래 수감생활(1980년 5월~1982년 12월)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이사장은 1982년 12월 성탄절 특별사면조치로 석방된 후 5·18 진상규명과 사회운동에 헌신했다.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에서 신군부의 고문 수사를 폭로했고, 1995년 검찰의 5·18 학살 책임자 불기소 처분에 맞서 수사 결과를 검증하는 등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이어갔다. 당시 검찰의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며 6년간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이끌기도 했다.

황일봉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은 "전날까지 함께 저녁 먹으면서 웃고 이야기했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에 황망하다"며 "당신이 세상에서 하직할 것을 아셨는지 최근에는 5·18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울컥울컥하셨다. 한이 많아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먼저 가실 줄 알았나 보다"고 말했다.

임종수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회장은 고인과 나란히 광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인연을 떠올렸다. 임 회장은 1980년 12월 광주 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수감됐을 당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감 중인 고인을 만났다.

임 회장은 "5·18민주화운동 42주년 행사에서 내빈석에 나란히 앉아 이동 때마다 부축을 도왔는데, 그게 마지막 모습이 됐다. 애석할 따름이다"며 "광주교도소에서 만났던 정 선배의 모습이 기억난다. 사형선고 때문에 정 선배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둔 손을 꽁꽁 묶어 놨는데 그 모습으로도 꼿꼿하게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던 지역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큰 어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 5·18민주화운동 명예만 생각하셨다. 작년까지 5월 3단체가 내홍을 겪을 때,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우리가 잘해야 5월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는 거라고… 최근 3단체가 공법단체로 전환되면서 기대감이 크다 했는데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김영훈 전 5·18민주화운동 유족회장은 "광주에서 민주화의 상징 같은 분이다. 평생 오월에 헌신한 분이다. 지난 27일 부활절 행사에서도 봤는데 부고 소식이 실감 나지 않는다"며 "형수님인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님과 80년대 90년대 여러 오월 단체를 결성해 5·18 진상규명에 목소리를 내왔다. 어쩌면 내 친형제, 친남매와 같은 분들이라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한편 고인의 영결식은 31일 오전 10시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엄수되며 이후 5·18기념재단 앞 노제를 지낸 후, 전남대학교~ 옛 광주교도소 앞을 거쳐 국립5·18민주묘지 제2묘역에 안장 될 예정이다. 장례위원회 상임위원장은 박석무 선생, 지선 스님, 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이 맡았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