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뻘짓'해서 자식 키운다는 '여자만 보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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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뻘짓'해서 자식 키운다는 '여자만 보물섬'
보성 장도||뻘배 타고 캐는 벌교참꼬막||장도 주민들의 주요 수익원||갯벌은 람사르 습지 지정 등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꼬막길·뻘배길, 소박한 산책길
  • 입력 : 2022. 06.23(목) 15:50
  • 편집에디터

갯벌에서 뻘배를 타는 장도의 어머니들. 뻘과 갯물을 적절히 이용해 움직인다. 이돈삼

보성 벌교는 '꼬막의 지존' 참꼬막의 주산지다. 참꼬막은 알이 굵다. 비릿한 냄새가 약간 난다. 육질을 손으로 만지면 오므라들 정도로 싱싱하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도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하다'고 언급돼 있다.

벌교꼬막의 4분의 3을 생산하고 있는 섬이 장도다. 장도는 '꼬막섬'이다. 장도를 꼬막섬으로 만든 건, 여자만(汝自灣)의 갯벌이다. 여자만 갯벌은 차진 진흙갯벌이다. 갯벌이 화장품 크림보다 곱고, 아이스크림만큼 부드럽다. 람사르습지, 습지보호구역,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세계자연유산으로도 등재된 갯벌의 '끝판왕'이다.

장도에는 독특한 풍경이 있다. 썰물 때가 돼 바닷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뻘배를 탄 마을 어머니들이 갯벌을 점령한다. 기계의 힘을 '1'도 빌리지 않고 어머니들의 의지로만 움직인다. '가고 싶은 섬' 보성 장도의 슬로건도 이 모습을 담아 '뻘배가 있는 풍경'으로 정했다.

"갯벌의 색깔이 어떻습니까? 바닷물은요? 회색이잖아요. 장도 풍경은 화사한 톤이 아닙니다. 화려하지 않은 회색톤, 느림과 갯벌의 섬 장도의 빛깔을 찾은 거죠. 빼어난 풍광은 없을지라도 사람과 갯벌이 있고, 정이 있는 섬이 장도입니다." 박형욱 보성 장도 '가고 싶은 섬' 추진위원장의 얘기다.

뻘배는 길이 2.5∼3m, 폭 25∼30㎝의 널빤지다. 섬마을 어머니들은 이 뻘배를 타고 '뻘짓'을 해서 자식을 키웠다. 가족의 생계도 꾸렸다. 하여, '논 몇 마지기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뻘배다. 옛말에 '굴 양식하는 집에 숟가락은 없어도, 조새는 식구들 수만큼 있다'고 했던가. 김준의 책 〈바다맛 기행〉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똥섬. 장도의 끄트머리 짱끝에서 나무다리로 이어져 있다. 이돈삼

'꼬막섬 벌교 장도에는 한 집에 뻘배가 서너 개 있다. 20∼30년은 기본이요, 50여 년 동안 뻘배를 탄 어머니도 계신다. 매일 물이 들고 빠지는 갯벌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뻘배는 손이고 발이었다. 시집와서 밥 못 짓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뻘배를 못 타는 것은 큰 흉이었다.'

뻘배는 갯벌의 특성을 알고, 뻘과 갯물을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 소설 <태백산맥>에는 '널빤지 위에 왼쪽 다리를 무릎 꿇어 몸을 싣고, 왼손으로 단지와 널빤지 끝을 함께 잡고, 오른발로 뻘을 밀고 나가면서, 오른손으로 꼬막을 더듬어 찾는다'고 적었다. 뻘배는 낙지나 짱뚱어를 잡으러 나갈 때도 쓰인다.

장도는 여자만의 한가운데에 떠 있다. 양쪽으로 고흥반도와 여수화양반도를 끼고 있다. 북으로는 벌교와 순천에 맞닿아 있다. 남북으로 30㎞, 동서로 22㎞, 면적은 318.17㎢에 이른다. 여기에 순천동천과 벌교천이 흘러든다. 순천동천이 여자만과 만나는 지점이 순천만이다. 벌교천이 여자만을 만나 몸을 섞는 곳은 장암리다.

장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섬의 지형이 노루를 닮았다고 '장도(獐島)'로 이름 붙여졌다. 자연풍광 넉넉하고, 주민들도 살갑다.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지정돼 있다.

마을 안길에 그려진 벽화. 뻘배와 소, 코끼리를 주제로 그려져 있다. 이돈삼

마을 안길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단연, 뻘배를 타는 어머니들이다. 뻘배를 타고 갯벌에 나가 꼬막을 채취하는 마을 어머니들이 실제 모델이다. 소와 코끼리 벽화도 만난다.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워낭소리' 아시죠? 우리 섬에도 '워낭소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윤점수 할아버지와 누렁소 이야기인데요. 척박한 섬살이에서 농사를 돕고, 자식까지 키워준 누렁소가 할아버지와 27년 동안 같이 살다가, 4년 전 봄날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그 누렁소를 섬에 묻어준 겁니다." 박형욱 위원장의 얘기다.

장도에 딸린 작은 목섬에 가면 '누렁이 무덤(소무덤)'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윤점수 할아버지 이야기는 2017년 4월 텔레비전 프로그램 '인간극장'에서 '노인과 소'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바 있다.

코끼리 그림은 태종 때 코끼리 유배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코끼리가 사람을 밟아 죽였고(태종12년 12월 10일), 그 코끼리가 장도로 유배됐다는 <태종실록>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보성 장도가 아니다. 코끼리가 유배된 섬은 순천부 관할의 장도, 지금은 간척과 매립으로 사라진 여수 율촌의 장도(현재 현대하이스코 자리)였다. 보성 장도가 '가고 싶은 섬' 사업을 추진하면서 '코끼리 유배 섬'을 빌려 썼을 뿐이다. 주민들의 의욕과 안이한 행정이 빚어낸 해프닝이다.

소박한 섬 산책길. 길 이름도 '꼬막길' '뻘배길'로 붙여져 있다. 이돈삼

섬 산책길은 소박하다. 길 이름이 '꼬막길'과 '뻘배길'로 붙여져 있다. 신경백사장~벼락맞은바구~가느바구~대촌 당산나무, 일정금~하방금전망대~북두름산~부수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정겹다. 일정금과 하방금은 배를 댄 곳,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를 가리킨다. 부수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해발 76m의 북두름산에서는 질펀한 갯벌과 주변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다.

장도의 밭에는 땅콩이 많이 심어져 있다. 보성군 시니어 클럽의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시작됐다. 땅콩, 작두콩, 고구마 등을 다양하게 심고 특산물 판매장을 통해 방문객에게 팔 계획을 짜놓고 있다. 주민들로 땅콩사업단도 꾸렸다.

여자만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장도의 하루는 뭍의 시간과 다르다.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바다의 시간에 맞춰져 있다. 하루 48분씩 늦어지는 만조를 기준으로, 섬사람들의 시계도 48분씩 늦어진다. 장도로 들어가는 배의 출발시간이 날마다 다른 이유다. 벌교 상진항에서 '장도사랑호'를 타면 30여 분만에 데려다주는 장도이지만, 오가는 뱃시간은 날마다 다르다. '갯벌섬' 장도에서 배우는 또 하나의 미학이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남도 대변인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