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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서 얻는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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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서 얻는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게재 2022-09-08 09:00:00
수학 예찬. 길 제공
수학 예찬. 길 제공

수학 예찬

알랭 바디우 | 길 | 1만8000원

"나에게 수학은 나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고, 인간이라는 종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일이다." 최근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수상 소감으로 한 말이다. 수학은 우리 인간의 사유 방식과 한계를 들여다보는 일이고, 또한 즐거움을 준다는 이야기이다.

현존하는 세계적 철학자 중 한 명인 프랑스 알랭 바디우가 2015년에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철학자인 그가 출판인 질 아에리와 수학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고, 그것을 '수학 예찬'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수학을 예찬하는 이 대화는 수학이 지금 위기에 빠져 있으며, 구해내야 한다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1장 수학을 구해야 한다에서 바디우는 오늘날 위기에 빠져 있는 수학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그와 더불어 철학을 구해내기 위해 수학을 예찬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수학의 위기란 오늘날 수학 학습이 입시용 선발 도구로만 사용된다는 데서 일어난다. 수학이 소수의 탁월한 수학자 집단 내에서만 소통되는 수학적 귀족주의에 이르게 되었고, 일반인들은 그런 탁월성을 그저 경외의 눈빛으로 대할 뿐, 수학을 구성하는 형식과 규율의 합리성을 경원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2장 철학과 수학은 철학과 수학의 오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실 수학과 철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시작된 이래 아주 오랫동안 함께해 온 커플이다. 이들이 함께 묶일 수밖에 없었던 주된 이유는 수학이 어떠한 권위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증명에만 의지하는 합리적 인식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수학은 신화나 계시의 권위에 호소하지 않으며, 오직 수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에 의해 인정된다.

3장에서는 철학이 수학을 바라보는 두 가지 주요 성향에 관해 이야기한다. 흔히 플라톤주의적이라 일컬어지는, 존재론적이거나 실재론적인 성향이 있는데, 이는 수학이 존재하는 것의 일부를 이룬다는 입장이며, 수학이 없다면 물리학(현실 세계의 과학 이론)이 실존할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생각 또한 설명할 수 있다. 즉 갈릴레이의 말 그대로 세계는 수학적 언어로 쓰여 있다고 보는 입장인 것이다.

다음으로 형식론적 성향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이 입장에 따를 때 수학은 그저 언어게임에 불과하며 형식적으로 엄격한 언어의 규약이 될 뿐이다.

4장은 자신의 주저인 존재와 사건에서 제시하게 될 시도들을 간략히 논한다. 종교가 제시하는 신이라는 초월적 절대성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편적인 것과 단독적인 것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는 수단이었다. 그런데 바디우는 신의 초월성을 제거하면서도 그 이점을 그대로 취하는 동시에 절대성을 내재적 차원으로 끌어오고자 한다. 신성 없는 절대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5장은 수학에서 주체가 이르게 될 행복을 이야기한다. 정치, 예술, 과학(특히 수학), 사랑이라는 각각의 진리 영역에서, 진리에 참여하는 주체는 정치 참여의 강렬한 열정을, 감동을 주는 예술작품에서 오는 즐거움을, 새로운 사유에 이르게 하는 정리의 이해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을, 그리고 둘의 마주침에서 사랑의 황홀함을 얻게 된다.